평범한 가족과 인간의 군상에 대한 파괴와 질문.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를 읽고.

by 이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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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에게 그는 어느 곳에도 굳건히 뿌리 박지 못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공위에 올라서서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해리엇은 자신이 부적합한 인간이라는 정의를 내렸다.

이 애는 예쁜 아기가 아니었다. 전혀 아기같이 생기지도 않았다. 누워 있는 동안 마치 그곳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처럼 두툼한 어깨에다 구부정한 모습이었다. 아기의 이마는 눈에서부터 정수리 쪽으로 경사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굵고 노르스름했으며, 가마 두 개에서부터 삼각형 또는 쐐기 모양으로 이마까지 내려오는 이상한 모양으로 나 있었다. 옆과 뒤쪽 머리카락은 아래쪽으로 자라고 있는데 앞쪽 머리카락은 이마 쪽으로 누워 있었다. 손은 두툼했고 손바닥에는 근육이 보였다. 아기는 눈을 뜨고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건 우연이야. 누구나 벤 같은 애를 가질 수 있어. 그건 우연히 나타난 유전자야, 그것뿐이야"
"난 그렇게 생각 안해"
그녀는 완고하게 주장했다.
"우린 행복해지려고 했어!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아니, 나는 행복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결코 없어.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려고 햇지. 그래서 바로 번개가 떨어진 거야."

<본문 중>.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를 읽었다. 예전에 조금 읽다 흥미가 생기지 않아 책장에 꽂아 두었다가 몇 년이 지나 누군가의 추천으로(재미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꺼내 들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르게 첫 문장부터 흡수되었다. 특별할 것 없지만 뭔가 미묘한 문체와 전개.


남녀가 파티에서 만나 연인이 되고 어느 순간 함께 미래를 꿈꾸며 결혼함으로 자신들의 자녀 계획(다자녀)과 그들을 둘러싼 이들과의 갈등과 마찰. 특히 아이가 새롭게 태어날수록 더해져가는 상황 변화와 심리 그리고 주변이들과의 갈등이 꽤 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철창에 갇힌 기분이었다.


이 갈등과 파괴는 다섯째 아이 '벤'이 태어나면서 절정에 이른다. 정상아이와는 다른 비정상적인 아이, 이 존재의 탄생은 순식간에 집안의 공기를 바꿔 놓는다. 4명의 아이가 있는 집안에서의 다섯째 아이. 뱃속에서부터 엄마를 고통으로 몰아 넣었던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뿐 아니라 주변의 가족들까지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존재 자체가 정상적이지 않음에서오는, 소위 특이한 생김새와 알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 등 보통과는 다른 아이에게 가족들은 다른 무엇을 느낀다.


이 아이로 인해 가족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파멸로 이른다. 존재 자체가 평화를 파괴하는 주범으로 전락해버린 어린 아이. 이 속에서 아이를 양육하며 고통의 극강을 견디는 것은 바로 엄마 '해리엇'이다. 4명의 아이와 다른 이 특별한 아이에게 해리엇은 책임감을 가지고 양육하지만 자신의 인간적 한계와 모성애의 책임은 더이상 그녀를 사랑으로 이끄지 못한다. 이 간극 사이에서 해리엇 그녀의 심리적, 정신적 갈등과 고뇌는 절정으로 이른다.


엄마 해리엇과 다섯째 아이 벤 사이에서 나머지 가족들은 그저 참여자와 제3자로 전락한다. 아빠이자 남편인 데이빗은 점점 자신의 역할과 위치에서 사라진다(그는 자신의 최선을 변호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모두의 평화를 위해 벤을 어느 한 시설로 보내 버리며 무책임함을 어쩔 수 없는 책임감으로 포장해버리지만 나는 그 대목에서 과연 나라면 달랐을까? 라며 계속해서 자문을 해 보았다. 답은 그 두 사람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결론 지을 수 없다는 것. 그 누구도 두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것.


한 부부가 꿈꾸었던 행복한 가족의 형태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다. 초반 크고 넓은 집 안 자녀들로 가득하여 행복만을 꿈꾸었던 그들의 행복은 결국 다섯째 아이로 인해 무너졌지만 과연 그것이 다섰째 아이로 인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한 아이가 태어날수록 그들의 모습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져 있었다. 그 마침표를 찍은 것이 벤의 탄생이었을 뿐이다. 어쩌면 자신들이 꿈꾸었던 행복의 형태에서 멀어져 가는 이유와 책임을 벤에게 돌리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벤의 희생. 정상에서 조금 빗나간 존재의 타당하고 마땅한 이유.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모래 밭에 발이 빨려가 듯이 빠져들었다. 벤을 향한 해리엇의 생각과 감정이 폭풍이 휘몰아치 듯이 거침 없었다. 평범한 가족과 인간의 군상에 대한 질문과 파괴. 정상적인 것과 여성으로, 엄마로 삶을 껴안 게 된 한 인간의 책임, 고통 그리고 공포를 거침없이 나열하는 텍스트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애쓴 해리엇이 안타깝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자녀의 출산에 죄책감을 가지며 자신으로, 여자로 그리고 엄마로 단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잠깐의 행복은 있었지만 그녀의 삶의 절반 이상을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로 점칠되었고,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이상적인 행복의 형태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죄책감을 껴안으며 엄마로 살아내기를 힘썼던 그녀가 나는 애처로웠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며 진심으로 위로해주는 이는 없었다. 그녀의 남편 조차 갈수록 그녀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함께 불행을 견디어 내는 것 같지만 그는 그녀의 변두리에서 자신의 영역에서만 서성이는 사람이었다(물론 그도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어쩌면 내가 원하는 남편 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 해리엇이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믿기를 기대하지 않지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불쾌한 농담이에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 이렇게 불평하는 동안 신랄했지만 해리엇은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쓰라린 세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길리 박사는 책상에 앉아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 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로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 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어제까지 그런 말을 안 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전 그저 죄인이죠!"

p.140



도리스 레싱은 이 책을 통해 '과연 행복한 가정의 형태는 무엇인가?'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그것 때문일까?' '엄마의 모성애는 무엇이라 칭할 수 있는가?' '정상의 범위에서 벗어난 인간의 탄생이 과연 부모들의 죄로 인해, 아니면 어떤 이유에 의한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정상, 평범성, 그리고 행복과 모성애에 대한 전통성의 패러다임을 나열하며 파멸과 파괴 되는 인간의 내면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았던 삶에 푹 빠져들어 내 마음에 균열이 생겼음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불행이 삶에 깊숙히 스며들어 파멸에 이르며 살아내기를 분투하는 해리엇을 내 삶과 분리시키며 선을 긋고 있었다.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난 그녀와 같은 불행을 겪지 않아야 할텐데..'


이것이 도리스 레싱, 그녀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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