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산부테라피에 올인하는 이유2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알아볼 곳은 조경분야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쉬는 기간 없이 삼촌 건설회사의 조경 부서로 입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삼촌이 회장님이다 보니 오히려 회사 생활이 편치가 않아 적응하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다른 조경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조경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하루에 최소 50~최대 100번 이상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현장과 사무실, 업체들 간의 조율을 하였다. 또, 아침 6시면 출근해서 밤 9시, 10시에 퇴근하며 전국의 공원과 아파트 현장을 지치지 않고 신나게 돌아다녔다. 초행길도 아무리 험한 길도 겁내지 않고 달려서인지 지금은 베스트 드라이버다.
남자들만 가득한 거친 현장에 20대 후반 앳된 야리야리한 아가씨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얼마나 신기했을까? 현장에 문제가 생겨도 인상을 쓰기보다는 정말 죄송하다, 더 잘 하겠다며 예의를 다 갖추어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여자라고 불이익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장 담당자들의 도움을 잘 받아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런 나의 모습에 현장 소장님들은 신뢰감이 생겼는지 알바 거리를 하나씩 던져주셨다. 하지만, 나는 내 주머니를 채우지 않고 회사로 일거리를 넘겼다. 이에 소장님들이 “혼자 돈 좀 벌으라고 일부러 줬더니 왜 회사로 넘겨요?” 하며 나를 나무랐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맞다, 이거 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이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30대 초, 덥석 법인으로 조경회사를 차렸다. 당연히 부모님과 지인들의 금전적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더욱 돈이 필요했다. 이후, 대단지 아파트 현장의 조경공사를 수주하게 되면서 그분들의 도움에 바로 보답할 수 있고 성공도 코앞에 있는 줄 알았다. 그 시절 건설회사 대부분은 2달 뒤 기성을 받는 식이였다. 그래서 공사를 우선 진행하기 위하여 은행에서 대출까지 가능한 대로 다 받았다. 돈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며 드디어 마지막 잔금 받는 날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 그 건설회사는 우리가 모두 알만한 회사인데 그날 법정관리를 신청하며 하청들이 받아 가야 할 현금들을 모두 지급정지시켰다. 그 잔금은 자재업체들과 부모님, 그리고 지인들의 도움을 갚을 수 있는 돈이었는데… 내 인생 최대 위기였다. 나를 믿고 도와준 모든 이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빠뜨린 것이다. 한 마디로 망한 것이다.
능력은 부족한데 겁이 없었나? 괜한 나의 욕심이었나 싶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죽고 싶었던 기억뿐이다. 늪에 빠진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