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임산부테라피에 올인하는 이유 3
어떻게든 버터야 했다.
다행히 나는 조경회사를 운영하면서도 주말이면 유기농업 자격증 취득 학원 강사일을 하고 있었다. 12년 전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꽤 높은 강사료였다. 대상은 중국 동포들이었다. 한번 강의할 때마다 100명 앞에서 9시간씩 떠들어야 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중국 동포들에게 취업비자를 주기 위한 정책으로 이루어졌던 사업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원들은 이 사업이 돈이 되겠다 여겨 혈안이 되었다. 심지어 자격증 취득을 못하면 학원비를 환불해 준다는 학원 방침까지 내걸었다. 나는 어떻게든 합격률을 높여야 했다.
학원 원장님은 내가 사업 부도로 어려운 상황임을 알고 합격시킨 사람들의 학원비의 50%를 인센티브로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학원비가 100만 원 돈이었기에 그 제안은 나에게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었다. 너무 감사했다. 꼭 이 어려움을 타개해야겠다는 생각에 2주 밤을 새우며 유기농업기능사 시험을 모두 분석했다.
드디어 패턴을 찾아냈다. 내가 분석했던 패턴이 통했고 정말 많은 합격자가 나왔다. 중국동포들이 우리말을 할 수는 있어도 문자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한글도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나의 합격 공략법으로 합격을 시켰다. 소문을 듣고 수강 신청자가 몰려들었다. 다음 시험도 또 성공했다. 100명 중 10명 내외의 환불만 이루어지고 학원 원장님의 통장은 대박이 났다.
그런데 정말 나를 또 한 번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학원물은 잠겨져 있었고 원장님은 학원을 몰래 접고 도망을 간 것이다. 이 무슨 코미디 영화에나 일어날 법한 일인가…
회사는 부도나고 그것도 모자라 개인파산! 어이없는 사기까지 당하며 법원, 경찰서, 검찰청 사이 뺑뺑이를 돌았다.
어느 날 무더운 여름이었다. 나만 없어지면 이 모든 일이 사라질 거 같아 팔당대교를 건너 차를 세웠다. 멍한 상태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시원하게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저들은 저렇게 신났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다시 다짐했다. 어떻게든 버텨내기로!
이후 근처 다른 학원의 대표님이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새로운 일을 해보지 않겠다며 다른 직장을 추천해 주셨다.
이것저것 따질 거 없었다.
“할게요! 저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