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일편단심인 편이다. 무엇 하나가 마음에 쏙 들면 특별한 큰 일이 없는 이상, 그 마음을 좀처럼 거두지 않는 편이다. 마음에 쏙 들기가 쉽지 않다는 건 함정이지만. 엄지혜 작가님의 책 제목처럼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이랄까.(출판사_마음산책) 오랫동안 외로움과 손 잡고 살아서인지, 내 안에 무언가 들어왔다는 것 그 자체만도 큰 품을 내어주는 것이기에, 그것을 다시 쫓아내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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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역 근처에 있는 로펌에 다니며 맛있는 식당들을 메모해 두었다. 폴더명은 <서초역 교대역 맛집 리스트>. 그런데 슬프게도- 리스트업 한 맛집들 중에 유난히 더 마음이 가는 최애 맛집 TOP 7 중 3개나 사라졌다. 깊은 맛이 일품인 차돌된장찌개 맛집, 얼큰하고 찐한 버섯칼국수 맛집, 부드러운 재질의 계란말이와 찰떡궁합이었던 부대찌개 맛집이 그 주인공이다.
출입문에 붙여진, 문을 완전히 닫았다는 종이를 보고, 마치 배신당한 연인처럼 한참을 우두커니 서있었다. 너 무 해. 말 도 없 이. 친한 동료, 상사님, 변호사님들과 점심식사를 할 때도, 퇴근 후 지옥철을 피해 혼밥을 할 때도 애용했던 곳들.......
마치 그곳에 얽힌 소중한 추억들마저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오랜 교사생활을 청산하고 가장 좋았던 것들 중 하나는, 바로 점심시간의 보장이었다. 누군가와 함께 먹든 혼자 먹든 온전한 나만의 식사, 잠시의 휴식 시간이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교사시절엔 교실 안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도우며 5분 안에 대충 밥을 먹었다. 화장실도 맘 편히 가지 못했고. 유치원에 머무는 중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없었다. 원장은 교사들이 잠시라도 앉을려하면, "일어나, 일어나, 쉬지 마, 뭐 해!?" 하며 당연한 착취를 했다. 휴식이 아닌, 20명에 가까운 유아들을 관리, 관찰을 하는 중이었음에도.
탈교직을 하고,
'회사 다니는 사람들 이렇게 행복하게 살았어......?'
'온전히 1시간을 내 시간으로 쓸 수 있어......?'
하며 천국과 같은 행복에 감사했다. (어떤 이에게 이렇게 말하니, 그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인 곳도 있다며 나를 안쓰러워했다.ㅎㅎ) 기본권도 보장받지 못하고 사회폭력에 오랫동안 절여진 나로선, 드디어 사람답게 삶에 어찌나 좋았는지.
여하튼, 그렇게 마음을 두고 몸을 맡겼던 식당들이 3개나 사라졌지만……
그래도 살아지더라!
럭키비키하게도- 그 후 회사 근처에 맛있는 식당들, 카페가 새로 생겼다. 특히나 커피와 디저트 모두가 취향저격인 카페가 새로 생겨 요즘엔 매일 그곳에 가고 있다. 게다가 자취를 시작하고 집 근처에 커피 맛집이 없어 힘들었는데, 새로 생긴 커피 맛집을 알고 너무나 행복했다. 커피를 사랑해서 고르는 입맛이 까다로운데도 매우 만족스럽다. 역시나 거의 매주 그곳에 간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가게 될 곳들.
오래오래 고요히 나의 위로가 되어주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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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제 와서 표현을 조금 수정하고 싶어진다.
사라진대도 살아진 날들이 아닌,
사라진대도 살아낸 날들이라고.
공지영 작가님의 책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출판사_해냄출판사)의 한 부분을 담아내며-
그때 나는 알았다. 새것이 오기 전에 옛것을 반드시 버려야 하는 때가 있는데 이 버리는 데도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만두고 포기하는 것, 멀리 보내고 이별을 해내는 것도 힘이 있어서라는 것을. 그것이 사람이든 사랑이든 물건이든 제가 이루어냈던 과거의 꽃 같은 영화로움이든.
동백은 두 번 핀다. 한 번은 나무 위에서 그리고 한 번은 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