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다가오는 계절보다 이제 지나가는, 이제 막 굿바이 인사를 보내야 하는 계절에 더 마음이 간다. INFP라서라기보단 그냥, 나의 자연스러운 성정이랄까. 미련이라기보단 글쎄, 무엇이라 하면 좋을까.
이제 더는 눈 맞출 수 없고 발 맞출 수 없는 올해의 여름이 지나간다. 많은 사람들처럼, 흔한 인사말처럼 이제 가을에게 손짓하며 새 계절 맞을 채비를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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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할 시간이 없다. 읽고 싶은 책이 아직 산더미인데... 직장 생활하랴 공부하랴 마음이 조급하다. 번아웃이 오지 않게 마음 관리, 컨디션 관리도 함께 해야 하니 더 힘들다. 세상 참, 쉬운 게 하나 없구나. 그럼에도 이 책만큼은 출간되자마자 며칠 굶주린 사람의 오랜만의 만찬처럼 읽어 내려갔다.
남인숙 작가님의 신간,
<마음을 가지런히>(출판사:리안북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의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상처를 가진 채로도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이하 생략……)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처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전의 나처럼 그것을 해결해야 할 숙제로 여긴다. 이미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상처를 다시 수술이라도 해서 없애버리고 싶지만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칼을 댈수록 고통은 깊어질 뿐이다.
큰 상처에 잡아먹히지 않고 잘 살아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라는 질문은 그래서 당사자들에게 대체로 당혹감을 주는 것이다. 극복한 적이 없는데 그 방법을 물으니 어리둥절일 수밖에.
사람의 내면은 알프스 설원 아래 숨어 있는 거대한 균열, 크레바스와 같다. 우리 마음의 크레바스는 메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존재한다고 해서 행복해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고개를 박고 그 심연을 들여다보며 절망을 반복하지 않으면 크레바스는 내 행복과 상관없는 존재일 수 있다. 살면서 크레바스를 건너가야 할 일을 만난다면 나무 널빤지라도 구해와 다리를 놓으면 된다. 평소에는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초원에서 염소를 돌보며 뛰놀면 된다.
(……이하 생략……)
“언제까지 과거 일을 끌어안고 살 거냐.”
“어른이 되었으면 이제 그만 잊어.”
이런 말들은 어릴 때 받은 상처, 나쁜 인연을 맺은 후유증으로 얻게 된 상처 때문에 불행이 현재진행 중인 이들에게 폭력적이다. 심장판막증 수술을 받아 가끔 가슴 뻐근한 통증을 앓는 사람에게 못 잊어서 아픈 거라고, 잊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젊은 나이에 마음의 충격으로 심장이나 신장 등의 장기에 손상을 입고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다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상처 때문에 행복할 수 없다고 믿으며 심연만 들여다보고 살지는 말라고.
우리는 상처를 품고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게 설계된 존재라고.
오랫동안 혼자 붙들고 힘들어했던 부분이 내려놓아져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 여러 번 읽고, 또르륵 눈물도 흘렀다. 감사한 마음이 솟구쳐 책을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어쩌면, 지나가는 계절을 쉬이 보내주지 못하는 내 마음은 자꾸만 나의 아팠던 과거를 되돌아보던 마음의 습관으로 인한 걸까. 혹은, 나의 소중한 누군가, 무언가가 어느 날 문득 나를 스쳐 지나가고 사라질까 생긴 애틋한 두려움으로 인한 걸까.
여전히 서툴긴 해도, 지금 난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나름 씩씩하고 밝게 잘 살아내고 있으니, 이제 여름도 웃으며 보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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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힘들었던, 그럼에도 여름이어서, 여름이라서 버틸 수 있었던.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붙잡고 품에 쏙 안기는 기쁨처럼 찬란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