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때때로, 갑자기 걸려온 그리운 이의 전화처럼 찾아온다. 무기력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하루를 유영하다, 그렇게 슬픔이 내게 온다. 갑작스럽게.
오랜 시간 그리 평온하지 못한 환경에서 살아내며 불안이 더 익숙한 나로 자라났지만, 온갖 노력을 한 끝에 이제 나도 행복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지고 있다. 행복이 아닌, 슬픔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마침내. 감사한 일이지.
같은 자리에 여러 번 난 상처를 끌어안고 치유하며 살다가, 가끔이라도 그곳에 다시 비슷한 상처가 날 뻔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덜컥 겁이 난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여전히 여린 것. 괜찮아, 그럴 수 있지. 토닥토닥. 그 시절 얼마나 아팠는데, 당연하지.
그래서인지 슬픔을 아는 사람이 좋다. 심지어 깊은 슬픔을 겪어본 적이 없는 자에게는 도저히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 삶이,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웠을지 알기에, 일종의 존경심까지 든다. 슬픔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남긴다. 그 사람만의 선율. 오로지.
오늘 집에서 이전에 사고 읽었던 책 몇 권을 다시 읽었다. 내가 산 책은 대체로 슬픔과 아픔, 마음과 사랑, 그리고 사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다. 못되고 나쁜 사람들, 혐오와 비교와 분노와 조롱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나를 돌봐준다. 지치고 너덜너덜해진 내 영혼을 씻어주는 하나의 의식처럼. 좋은 책은 오랜만에 읽어도, 여러 번 읽어도 늘 좋다.
내가 줄 수 있는 것, 그것은 무엇일까. 나 스스로도 더 단단해져서 그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내가 그에게 기대듯 그도 나에게 기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또 이 세상에게도.
작은 돌 하나에도 파르르 흔들리며 그것을 회복하는 데 온에너지가 드는 물웅덩이 같은 사람 말고, 어느 맑은 가을에 찾아간 하염없는 바다 같은 사람. 그렇게 넓고 커다란 사람. 슬픔을 아는 깊이 있는 나에서 이젠 더 나아가 더 성숙하고 단단한 내가 되고 싶다는 다짐.
가을이 왔다. 절정의 가을이 지나가는 중이다. 저마다의 선율로 물들어가는 예쁜 가을이기를 바라며, 빨간 단풍 우체통에 편지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