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법의 검은 막

by 모라의 보험세계


금융소비자법, 줄여서 금소법이라고 한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거의 모른다. 설계사들만이 금소법이라는 단어때문에 땀을 흘리고 화도 내고 포기도 한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영업하는 설계사들만.






나도 그 중 하나이다. 블로그, 유튜브, 틱톡, 카카오브런치 등으로 나의 일과 나의 본모습을 늘 보여왔다.






블로그와 유튜브는 모두 내가 속한 보험대리점에서 검열을 받고 통과가 되어야 포스팅을 할 수 있다. 난 욕도 잘 안하고, 과격한 단어를 안쓰는 유형이라 대부분 한번에 통과된다.






블로그는 하루면 통과가 되어 포스팅을 한다. 유튜브는 1차로 보험대리점에서 통과가 되면, 보험협회로 이관한다. 내 영상에 담긴 내용이 손해보험의 내용이면 손해보험협회의 심사를 받고, 생명보험의 내용이면 생명보험협회의 심사를 받는다. 2주정도 걸린다. 심사를 신청하고 2주뒤에 통과가 되어 업로딩했더니, 그 사이 상품개정이 있었던 적도 있다.






여기서부터가 금소법이 소비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는 많은 소비자들은 빠르고 구체적인 정보를 원한다. 나도 소비자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핵심과 장단점을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해 네이버와 유튜브에 검색한다.






금소법이 소비자를 위한 길에서 벗어난 이유는, 상품개정이 정말 빠르고 자주 있는 지금 시기에 심사시간을 최소 2주나 소요한다는 것이다. 상품명을 쓰면 절대로 안된다는 것도 소비자의 눈에 검은 막을 씌운 것과 같다.






보험을 찾고 비교하려는 사람들은 상품명이 핵심이다!






"농협의 가성비굿플러스어린이보험은 여성이 매우 유리한데 그 이유는 다른 회사에 비해서 보험료가 현저히 낮게 설정되었기 때문이며, 남성의 경우는 DB손해보험의 아이러브플러스건강보험이 가격도 낮고 기본계약도 많이 넣지 않아도 되어 농협이나 KB손해보험 등등 보다 유리할 수 있다"






위 문장을 영상으로 읽어서 게시하려면 2주를 기다려야하고, 농협과 DB, KB의 회사명과 상품명은 가려야한다. 이게 뭐야??






금소법은 소비자를 기만하는 설계사와 대리점을 엄벌하려고 만들었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 설계사와 그가 속한 대리점은 큰 벌금을 물게 되어 있다. 소비자가 피해사실을 알리면 말이다.






그 전에 사전예방을 위해 블로그와 유튜브 영업관련 게시물들을 심사받으라는 것이 현재 금소법의 명령이다. 피해는 아직 없고, 그 전에 매 부터 맞고 올리라는 것.






매를 맞는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자막의 받침 하나가 없어도 "틀렸어! 다시 해와!" 이다. 많은 회사들의 설계안을 저장한 파일목록을 영상에 담았더니 "보험회사 보이잖아! 가려!" 라고 답변받은 것이 나다. 잘못한 건 없는데 매를 맞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2주이다.






금소법의 검은 매는 몇 번 맞으니 맺집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용 상 과장광고나 악의적인 표현이 없는 유튜브 영상을 누군가가 협회로 신고하였다. 소속 대리점에서는 '협회에서 전달받았어요, 게시물 삭제하던가 심의받으세요' 라고 온다.






'금소법 심의하는 협회로 이 유튜브 영상을 신고해야지' 라고 구체적인 루트를 아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다. 설계사다. 설계사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신고하는 아수라장인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백내장수술 다초점렌즈삽입술의 분쟁으로 민원제기 10개월치가 밀려있고, 금융위원회는 이런 금소법 관련 기준을 완화하였다고 해도 아직 소비자를 위한 것도 아니고 설계사를 위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에너지 낭비를 일삼고 있다. 소비자의 알 권리, 설계사의 투명한 업무프로세스를 2주간 짓이기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금융당국 두 군데의 신뢰가 떨어진다. 잘못은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으면 되는데 말이다. 잘못하기 전 예방차원의 행위들이 상식적인 선을 벗어나면 그것은 만든 자의 무능함을 반영하는 것 뿐.







정상적으로 블로그 심사를 받고 포스팅한 글을 그대로 읽어 오디오파일을 만들었다. 그리고 관련 내용을 찍어 영상물로 만들었다. 친절하게 자막도 모두 손수 넣었다.






소속 대리점의 준법감시팀에서는 통과가 되어 손해보험협회의 심사부서로 이관되었다. 이제 2주 기다리면 된다. 여태까지 하던데로 만들었으니, 99.9%는 통과될 것이고, 대리점에서 통과되었다면 금소법 위반사항도 전혀 없는 것이 확실하다. 그래서 유튜브에 업로딩을 하였다.






만약 협회에서 수정하라는 것이 생긴다면 영상을 삭제하고 다시 만들어 업로딩을 해야할 것이고, 통과되어 심의필 번호가 나오면 영상 제목이나 더보기 설명란에 적으면 된다. 금소법은 내용이 중요하고, 심사만 통과되면 된다.






검은 막에 걸렸다고 깨달은 것은, 누군가가 영상을 신고했다고 들은 때부터였다.






협회로 심의 중인 영상을 똑같은 협회로 어떤 설계사가 신고하였다. 협회는 "신고 받았으니 처리해!" 라며 전달을 주었다. 엥? 심의 중이잖아요..?






심의 끝나고 내용 이상 없으면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 상식이다. 며칠 뒤 심사 통과되어 심의필번호를 받았다. 안심도 잠시.






충격적이었던 것은, 심의필 번호를 영상 안에 넣지 않고 영상 밖(제목이나 더보기 설명란, 댓글 등)에 넣으면 안된다는 똥같은 기준이 있으니, 수정이나 삭제하라는 것.






마치 청약서에 서명하는 고객이 서명란을 벗어나게 싸인하면 "안된다, 다시해라" 라고 명령하는 것과 같다. 직접서명이 중요하지, 서명크기가 중요한가?






금소법의 내용대로 잘 따른 영상에 "심의필 번호가 영상 안에 없고, 영상 밖에 있네, 다시 해라" 라고 명령받았다. 위반사항 없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이게??






영상 맨 끝에 심의필 번호를 넣는 것과 더보기 설명란에 기재하는 것 중에서 소비자가 더 잘 볼 수 있는 것은? 더보기이다. 그런데 이게 잘못된 것이니 다시 하라고? R U INSANE?






여차저차하여 심의필번호만 자막으로 영상 내에 삽입하는 것을 마무리 지었다. 어제 밤 검색하고 실행하였는데 오류, 오늘 아침 출근하여 재실행하고 재확인. 완료. 이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제 영상 안에 심의필 번호가 기재되지 않아 피해를 볼지도 모르는 그 어떤 소비자분에게 미리 앞서서 죄송하다는 사죄를 드리며, 앞으로는 더욱 비밀스럽고 가려진 보험비교로 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금융당국 금소법 관계자님들께 만족감을 드릴 때까지 더 열심히 형식을 다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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