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를수록 감정이 없다

by 모라의 보험세계

휴일이지만 사무실에 와서 하루계획을 정리하던 중, 자주 확인하는 단톡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보험설계사이니 자주 보는 단톡방은 설계사들의 공간.

휴일 오전 올라온 글은, 어느 상품의 수술비 약관이었다.



대부분 보험상품의 수술비는 하나의 진단으로 인한 수술은 연간 1회로 제한되어 있는데, 한 회사만이 횟수제한 없이 "매회지급" 이라는 차별성을 자랑했었다. 그러나 약관에 보면 안구질환과 악성신생물(암) 수술은 60일 이내 2회 수술 시 1회로 본다는 예외적인 문구가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질병 수술이 매회지급은 아니었던 것. (현재는 매회지급 수술조건은 종료되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놓았는지는 의문이지만, 한 설계사분이 보여준 약관의 내용에는


1. 매회지급 수술이지만 아래의 경우는 60일 이내 여러번 수술을 받아도 1회로 본다


2. 60일 이내 1회만 인정하는 수술들은 맘모톰, 망막박리수술, 레이저로 하는 안구수술, 체외충격파쇄석술, 내시경 수술, 악성신생물 내시경 수술, 방사선조사 등등... (더 있으나 더 적기가 참...^^;;)


3. 단! 악성신생물 수술 중 관혈적 근치수술은 위 조항에서 제외한다. (관혈이란 내시경이나 로봇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직접 해당부위를 절개하여 수술하는 것)



약관을 올려주며 질문을 던진 설계사님은 3번의 내용을 정확히 알고 싶어하셨다. 매회지급이 아닌 사항 중에서 3번은 결국 매회지급이라는 말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 말이 맞았다. 그리고 마지막 말에 놀랐다. 질문한 설계사 본인이 그 수술(악성신생물) 해당자라는 것. 무거운 마음으로 약관을 열고, 자신의 생각이 맞는지 정확하게 하고자 단톡방에 올리는 순간이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많은 분들이 댓글을 남겨주셨다. 정말 신속했다. 그런데..



약관 내용을 되묻거나, 제외되면 보상담당자에게 전화해보라고 하거나, 매회가 진짜 매회가 아니라며 ㅋㅋ 으로 끝맺음을 하거나... 질문을 보지 못하고 약관 내용을 다시 올려주거나... ㅠㅠ



질문자는 자신이 악성신생물 근치수술을 받고, 60일 이내에 또 받게 되었으니 매회지급 수술비를 받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나도 답글로 매회지급이 맞다고 쓰고,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적었다. 쾌유를 비는 사람은 왜 나 한명뿐이었을까. 많은 답글인원 중에서.. 그리고 질문과 답변은 종료되었다.



모든 매체가 비대면이다. 톡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그래서 신속하다. 그런데 정확하지 않은 것들도 늘어난다. 빠르면 빠를수록 덜 보고 덜 생각할 경우의 수는 훨씬 더 많아진다. 그리고... 공감과 감정은 어떤 때에는 매우 없고, 어떤 때에는 비틀어지고, 어떤 때에는 과도하다.



비대면 상담비중이 매우매우 많은 나로써는 항상 나와 대화하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첫번째가 되었다. 답변은 정중하고 상세하게 정리하여 주는 습관을 스스로도 잘 들였다고 생각한다. 얼굴없는 많은 인원이 모인 톡방은 자칫 잘못하면 오해와 다툼과 서운함이 난무한다. 얼마전 나에게 머리를 거치지 않은 단어를 던진 사람도 지금 톡방의 사람 중 하나이다.



쾌유를 비는 내 댓글에 해당 설계사님도 얼른 나아서 일상으로 복귀하겠노라고 남겼다. 그러나 그 뒤로도 사람들은 마치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다는 듯이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농담에는 좋아요 표시도 많아졌다.



가볍고 즐겁고 빠른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오늘의 단톡방은 씁쓸하다. 빠르고 신속한 글들일수록 핵심과 멀어지기도 하고, 적절한 감정에서도 멀어지는 걸 느낀다.



힘든 것에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것, 질문에 대해 정확하게 대답해주는 것, 오해가 생겼다면 서로 좋은 말로 상황을 주고 받는 것, 어렵지 않은데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의 시간이 결여된 대화들은 정말로 빠르고 알맹이는 없는 것이 참 많다.



빠를수록 감정이 없다. 난 요즘 종종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빠르면서 상황에 맞는 감정과 생각을 잘 챙겨야지 다시 한번 생각한다. 생각한 대로 되는 것이 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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