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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 Jan 30. 2024

학원비를 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학원비는 일시불로 하시나요?”


  나는 코딩 학원 상담실에서 카드를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달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고, 잘만 배우면 현재 업무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이직의 기회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해 고심 끝에 등록했다. 서른 살이 넘어 등록한 학원이라니, 주변 친구들 대부분이 잘했다, 기특하다 말하면서도 ‘또 뭘 배운다고?’라는 눈초리를 보냈다.



   직장을 다니면서 배우는 일에 돈을 지불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 이유는 어렸을 때 이런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나는 학교생활 외로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어떤 것을 배우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비용도 부모님에겐 제법 부담이라는 걸 커가면서 느끼게 되었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부모님이 모르는 부채감도 같이 커졌고, 고학년이 되자 더 이상 조르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고 사는 법은 눈치껏 일찌감치 배웠다.



  하지만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고, 이런 성정은 나이가 먹어도 변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 인생을 혼자 책임질 수 있게 되자 배우고 싶은 것은 무조건 저질러버렸다. 사람들은 가치를 부여한 소비는 아끼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에겐 자기 계발의 비용이 그러하다. 책을 사는 일, 무엇을 배우기 위하여 쓰는 돈, 취미생활 등에 쓰는 돈은 어쩐지 아깝지가 않다. 나는 어린시절의 나처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설령 후회할지라도 한번쯤은 도전해 보는것이 마음 편했다.


그런 의미에선지 몰라도 나는 책도 남들보다 많이 사는 편이고, 1년에 한 가지 이상은 목적이 있는 소비를 하고 있다. 목적보다는 가치에 집중을 하면 돈을 지불하는 일은 편했다. 가치에 집중하다보니 늘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투자의 목적으로 본다면 사실상 마이너스에 가깝다. 꾸준한 소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같은 일을 십 년 동안 하고 있으며, 직업을 바꿀 수 있을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남들이 보기에 의미 없는 소비에 꾸준히 지불할 용의가 있다.


   남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나의 소비는 다른 의미로 남기 때문이다. 모든 소비를 ‘효용’의 목적으로 본다면 얼마나 가치 없는 소비가 많을까? 효용보다는 내가 믿고 있는 가치와 신념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적더라도 비용을 지불해 경험한 것들은 분명 내 삶에서 나를 조금씩은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이다.





  코딩 학원은 애석하게 두 달간의 기초과정을 끝으로 더 이상 등록하지 않았다. 지독한 문과생인 나에게는 어려운 영역이었다. 2주간의 코딩 공부가 재미있어 업무를 전환할 수 있을까? 꿈꾸었던 일도 물거품이 되었다. 일시불로 지불한 40만 원의 돈 역시 남들이 보기에는 또다시 허투루 썼다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알고 있다. 이 수업으로 인해 내가 얻은 것들이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오늘도 그런 의미로 피아노 수업을 간다. 오후에는 책 배송이 올 예정이다. 여전히 나를 위한 소비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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