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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 Oct 31. 2021

서른 살 생일이 되었습니다.

꿈꾸던 서른 살을 살고 있는가.

며칠 전 나는 서른 살 생일을 맞았다. 우리 집에서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데, 이로 인해 나는 아주 여러 번 축하를 받는다. 주로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1. 음력 생일 (가족과 친한 친구들), 2. 주민등록상 생일 (회사 사람, 멀고 가까운 지인), 3. 피 축하자(?) 본인이 챙긴 해의 내 음력 생일이다. 축하해주는 분들을 일일이 잡아서 "오늘은 제 생일이 아니에요! 저는 음. 력. 생일을 챙겨요!" 하는 것도 까탈스럽고 귀찮기도 해서 1년에 생일 여러 개인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매일을 생일처럼 살면 되지, 뭐 별거 있나. 그래서 올해는 약 2주 정도를 생일 주간으로 선포하고 즐겼다. 아주 대대적인 기념일임이 분명하다. 나는 생일이라고 축하받는 것이 멋쩍고,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지내고 싶어서 주변에 생일을 잘 알리지 않는 편인데, 회사 홈페이지가 친절하게도 그날 생일 (주민등록 상 생일)인 사람들의 신상을 띄우기에, 본의 아니게 회사 사람들로부터 많은 축하를 받았다. 사무실에 누군가 올 때마다 다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셨는데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막상 진짜 생일(?)인 음력 생일은 혼자서 미역국 끓여먹고 조용히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생일 축하 선물을 받았다. 가족들은 핸드폰 케이스, 내가 좋아하는 유과, 약과 세트와 맨투맨을, 친구들은 원피스, 담요, 발레용 전신 워머 (!) 등을 주었다.  몇몇은 뭐가 갖고 싶냐고 직접  물어봤는데, "핸드크림, 디퓨저, 가습기, 전기방석, 캔들 빼고!" 했더니 일단 겨울 잠옷이 2벌 생겼다. 내년엔 잠옷도 리스트에 추가다. 생일 선물도 가려 받고 건방지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두에게 "행복한 제 생일 보내세요~"라고 전한다. 제법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들 웃는 걸 보니 행복한 것 같다.


이제 나는 나로 산지 30년이 다 됐다. 이십 대에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고 싶어서 애썼고, 서른이 된 나는 나를 긍정하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나로 사는 게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릴 때 상상한 서른 살은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 서른 살의 나는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고 노련하고 능숙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됐을 거라 생각했다. 더 이상의 고민도 걱정도 없는, 인생 그래프의 가장 높은 지점에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행복한 얼굴로 막이 내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점이 서른 살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된 지금은 보다시피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 이십 대 때와 같이 여전히 울고불고 고민하고 우울해하고 심지어 진로도 갈팡질팡하는 중이다. 삶의 경험치가 좀 쌓였을 뿐, 나는 여전히 나인채로 서른 살이 된 것이다. 나는 그저 시간이 나를 내가 상상한 서른 살로 데려다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는 열정적인 스무 살의 삶을 상상했고, 서른 살이 되기 전에는 안정적인 서른 살의 삶을 상상했다. 그리고 내 인생이 서른에 끝나는 것도 아닌데, 나의 마흔과 쉰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앞으로 더 많은 날을 살게 될 텐데, 왜 나는 내 시계를 서른에 멈춰놨을까. 이후의 나는 그저 고인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마흔이 된 나는, 쉰이 된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이제는 예전보단 현실적으로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서른 살의 어른스러움 인가. 하지만 여전히 나의 미래는 물음표로 가득하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그저 건강하고 우아하게 나이 들기를,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세상을 사랑하고 따뜻하게 주변을 대하기를, 새로운 것에 겁먹지 않고 도전하기를, 열심히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기를, 아무리 힘들더라도 위트를 잊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이렇게 살아간다면 내 미래의 모습이 조금 더 멋있을 거란 기대가 된다. 여러 생각을 안고 서른 살의 생일 주간이 지나간다. 나는 나로 몇십 년은 더 살아야 한다. 서른 살이 되니 이제는 나에게 좀 익숙해졌다. 이렇게 나는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오차 범위 내의 인생을 살겠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일도 힘내서 하루를 보내자. 체력 없는 서른 살의 이름으로 어영부영 글을 마무리한다.

다들 아시죠? 아직 모르시는 분들은 서른이 되시면 아실 겁니다. 행복한 제 생일 주간 마무리 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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