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들 녀석의 수학여행 가방을 같이 챙겨 주던 남편이 웃으면서 호들갑 떨며 내게 와서 하는 말이다.
"왜 뭔데? "
"드디어 우리 집에도 '장'이 나왔네. 당신 소원 풀이 했네 하하하.전교 회장, 부회장, 반장, 부반장 다음으로 높은 게 뭔지 아나? "
갑자기 도대체 이 남편이 뜬금없이 무슨 농을 던지나 하고 들어보니...
"전교 회장, 부회장, 반장, 부반장 그리고 그다음엔 방장이다. 방장!우리 ㅇㅇ 이가 방장이 되었네! "
그러면서 수학여행 계획서 종이 꾸러미를 내게 내밀며 보여준다. 수학여행 2박 3일 동안, 숙소 배정을 반별로 지정을 미리 해 놓고선, 각 방에 대표 방장을 미리뽑아 공지를 해 놓은 것이다. 거기에 떡 하니 우리 아들의 이름이 있었다.
방장이다. 무려 방장.
반장도 아닌 방장이 된 아들
방장도 "장"이라고, 그리 뿌듯하랴.
아들의 성격은 선뜻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렇게 조용한 스타일도 아닌데, 친구들끼리 무리 지으며 노는 것을 좋아하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그맘만 먹으면 된다는 초등학교 반장도, 6년 동안 인기투표로라도 한 번쯤은 반장을 해 볼 법 한데, 단 한 번도 반장 혹은 부반장이라는 "감투"를 써 본 적이 없는 아들 녀석이다.
부모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지라, 그 "감투" 한번 써 주기를 혹은 씌워주고픈 마음이 누구나 있기 마련이라, 타의든 자의든 두 손 번쩍 들어 "감투" 한번 쓰고 오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항상 기대 속에 매년 학기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한 번을 안 한다.
추천도 여러 번 받았다는데 스스로 안 한다고 다 포기했단다.
"반장 그런 건" 피곤하고 귀찮다나 뭐라나.
양껏 기대하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말이지.
그런데 드디어 감투를 썼다네?!
반장도 아닌, 방장!!(웃어야지? ㅎㅎㅎ)
아무렴... 수학여행 중엔 방장이 최고 아닌가!!
방장의 이름을 내 눈으로 확인하며 피식 웃는 나를 보며
"소원풀이 했다"며 놀려대는 남편이 밉지만은 않다.
이 "장"이 뭐라고, 감투가 뭐라고, 나도 내가 웃기긴 하다.
2박 3일 동안 친구들끼리 싸우지 않고 한방에서 잘 지내려면 방장의 역할이 아주 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