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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Apr 17. 2023

엄마의 상상력은 무한하고  또 무안하다

엄마의 상상력은 무한하다. 그러다 무안해진다.


누구나  엄마라면, 아빠라면, 부모라면,

아이들에 대한 무한한 기대와 꿈을 가지고 작은 일에도 우리 아이가 세상 최고 똑똑하고 멋진 아이이며 앞으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항상 꿈꾸며 기대하며 상상해 온다.

그 엄마의 기대와 상상력은 무한대로 뻗어가며 가끔은 무한한 상상이 무안해지는 일이 생길 때도 많다.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둘째 아이가 학에 간 사이, "의도치 않게"  책가방 지퍼가 열려있는 걸 보았고, "의도치 않게" 나는 그 책가방 속을 열어봤다. 책가방을 "뒤질" 의도는 순수하게 없다고는 말할 순 없지만, 단지 가정통신문을 찾아봐야겠다 싶은 마음이었다.


다들 경험이 있겠지만...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나 공지사항을 적은 전달를 아이들에게 배포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집에 "배달"이 되는 경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특히 아들일수록, 온전한 종이 형태의 가정통신문을 보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기한 내에 구깃구깃해진 종이라도 들고 오면 감사한 일이고,

이미 기한이 지나고 옆집으로부터 건너 듣는 일은 허다하며,

꼬깃꼬깃 이 종이들이 책가방 한 구석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어느 날 재활용 휴지통에 한꺼번에 쏟아지기도 부지기수다.


각설하고...

그래서 그날도 나는 아들의 책가방에서 온전한 가정통신문이라도 있을까 열어봤는데 뜻밖의 책 한 권을 발견했다.

그것도 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아닌, 중고서점이긴 하지만 알라딘에서 용돈으로 직접 구매한 책.

이태석 신부님의 <친구가 되어주실래요> 란 책이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의사 신부님으로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의료 봉사와 아이들을 돌보다 선종하신 훌륭하고 존경하는 분으로, 영화도 책으로도 널리 알려지신 분이시다.


그런데 그분의 책이 우리 아들 책가방에?

그것도 스스로 용돈으로 샀다고?

이때부터 이 책 한 권으로 나의, 엄마의 상상력이 무한히 발휘되었다.

"어머.. 00 이가 의사가 되려나? 어머 의사라니...

 신부가 되는 건 아닐 거니깐... 어머 어머...

 의사 되려고 자기 용돈으로 책을 산 거야?

어머 세상에... 의사라니... 공부 열심히 잘 시켜야겠다.

어머 세상에..."


이제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이, 이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이미 벌써 의대에 진학이라도 한듯한 호들갑을 떠는  나의 설레발이란, 어찌 보면 참 철없는 엄마요, 설레발이 과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 리 없다.


다시 책을 안 본 듯 책가방에 넣고, "완전범죄"처럼 가방도 제자리에 두었다. 가정통신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고 몇십 분 후, 학원을 마치고 온 아들에게, 모른 척 가정통신문 핑계를 대며 슬쩍 가방을 열게 만들고, 마치 처음 본 듯 놀래며 책의 출처를 물어봤다.


그리고 돌아온 아들의 대답..

"엄마... 나 진짜 억울해... 와.. 진짜.. 이럴 수가 있어???"

"왜?? 이게 무슨 책인데? "

"아니.. 국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책 리스트 중에서 권을 구해서 읽는 숙젠데 , 내가 좀 늦었는지,

이 동네 도서관이랑 교보문고 알라딘 다 돌아다녀도 선생님이 말한 책 리스트 중 남아 있는 책이 하나도  없었어. 딱 유일하게 이거 한 권 남아 있었어.. 알라딘에서  중고책으로... 그래서 산 거야.. 아.. 엄마.. 억울해... 딴 책으로 할 수 있었는데.."

"그.... 그래... 그래.. 그래.. 그랬구나... 억울한 일이네...그래..."

그래... 아들은 이 책을 고른 게 억울하다 했다.  

친구들이  다 고르고 남은 으로 숙제를 하는 게 억울하단 소리다.


그래.. 그럼 그렇지...

김칫국을 또 제대로 마신 나다.

나의 , 엄마의 무한한 상상은 순간 아주 무안해졌다.

불과 몇 분 전의 나의 설렘과 기대는 어디 갔는가.

무안한 마음을 숨기고 방문을 닫고 나가면서 그래도 마지막으로 한마디는 하고 나갔다.

"아들... 혹시 알아? 그 책 읽고 너도 혹시 의사가 되고 싶을지도 모르지..."


참... 나란 엄마란, 지금 생각해도 자신이 너무 웃길 뿐이다.  아들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은 건가? 아님 나의 욕심이 너무 과한 건가?

그래도 혹시 모르지, 사람일이란 게...

진짜로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진로나 꿈의 방향을

바꿀  있는 계기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인 거다.


이렇게 엄마의 상상력은 무한하고, 무안해진다.

그날의 무안함은 나의 무한 상상력 저장 창고에 잠시 넣어뒀다.


10여 년 뒤... 다시 꺼내어 길고 짧은 건 재보자고...

진짜 혹시 누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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