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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Apr 19. 2023

감정 쓰레기통

우리는 서로의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

감정 쓰레기통


우리 마음속엔 쓰레기통 하나가 있다.


감정 쓰레기통.

짜증, 스트레스, 분노, 화, 우울, 억울함, 쓰라림, 아픔, 슬픔.

감정의 쓰레기들을 그곳에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러다 가득 찬 감정의 쓰레기들을 누군가에게 때론 서로에게 그 쓰레기들을 쏟아내며 쓰레기통을 비워낸다.



고3 아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가득 찬 저녁이었나 보다.


밤늦은 시간 학원을 마치고 들어온 아들이 쌓여있던 감정 쓰레기들을 내게 마구 쏟아낸다.

나는 마음의 준비도 못한 채, 무방비 상태로 그 쓰레기들을 고스란히 나의  쓰레기통 되받아  주워 담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주면 주는 대로, 쏟아내면 쏟아내는 대로 나는 쓰레기들을 주워 담아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니면 누구에게 쏟아부으랴...

스트레스가 오죽하면 이 늦은 한밤중에 저리도 토 해내겠는가...


온갖 얘기가 다 튀어나온다.

어릴 때부터 해왔던 레퍼토리부터  미래에 대한 진로에 대해,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교육 현실에 대해 토해낸다.

무작위로 쏟아지는 단어들과 문장들 틈에서 나 또한 긁히고 상처받고 서있다.


그래도 어찌하랴.

이게 고3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감당해야지...

나의 쓰레기통도 안쓰러움과 짜증과 쓰라림과 슬픔으로 가득 채워진 밤이었다.


나의 가득 찬 쓰레기통으로 밤잠 설쳤다.

나도 비워내야 했다.

내 것도 비워내야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버려야겠다.

더 채워질 공간이 없어졌다.

나는 어디다 버려야 하나...

누구에게 토를 해내야 할까...


어쩔 수 없이 나는 남편에게 쏟아버렸다.

나와 아들의 쓰레기들을 한데 뭉쳐 버다.

조금 미안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비워야 했기에...

비우고 나니 좀 개운하고 깨끗해진 느낌이다.


아들도 그랬을까?

아들도 내게 쓰레기를 비우고 나서 좀 개운했을까?

이제 좀 깨끗해졌을까?


그러다 다시금 차오르는 감정의 쓰레기들을

서로에게 쏟아내는 날이 또 오겠지...


우리는 누군가의 때로는 서로 감정 쓰레기통이 된다.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언젠가는 아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누군가에게 비우지 않더라도  자체 소각 처리 할 수 있는 쓰레기통이 되기를 바라본다.


* 나의 화풀이를 받아준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마움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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