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엊그제 까지만 해도 다시 겨울이 온 듯 쌀쌀한 기운이 돌아 옷장에 넣어뒀던 머플러를 다시 꺼내어 목에 두르고 출근을 했었다. 꽃샘추위도 지나간 지가 한참인데, 이 추위는 뭐라 정의해야 하는지, 옴짝 움츠린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이름 모를 추위"는 그런 나를 보며 뿌듯해하지 않을까 생각한 며칠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목을 훤히 내놓아도 하나 춥지 않다.
이름 모를 그 추위는 며칠 만에 물러났나 보다.
여하튼 진짜 봄이다 봄. 완연한 봄
옷장을 열어본다.
굵고 무거운 니트는 이제 손이 더 안 간다.
아침저녁 찬기운이 조금 돌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손은 좀 더 가벼운 꽃분홍 알록달록한얇은 블라우스로 향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다.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항상. 누구나. 아마 이럴걸? )
"아.... 오늘 뭐 입지? 입을 옷이 없네 "
그런데 옷장 안은 옷으로 이미 빼곡히 가득 차있다.
가득 차다 못해, 겹겹이 쌓여 있는 옷을 찾으려면 옷 무더기를 힘 있게 손을 비집고 들어가찾아야 하고, 심지어 옷걸이끼리 겹쳐 걸려 있기까지 하다.
(옷장이 작다고 나는 항상 주장한다. 드레스룸이 큰 곳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한참을 옷장 앞을 서성거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이것저것 골라 보며 입을 옷이 없다고 아침부터 투정 아닌 투정을, 10대 사춘기 소녀 마냥 툭툭 내뱉고 나온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남편의 따갑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치가 나의 뒤통수에 내리 꽂힌다.
( 그래 안다. 나도 알거든 )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거리며 열어본다.예쁜 봄 원피스도 사고 싶고, 꽃무늬 블라우스도 이뻐 보인다. 청바지랑 입을 티셔츠도 담아보고, 얇은 바람막이 점퍼도 필요할 것만 같아 담아본다.
어느덧 온라인 쇼핑몰의 장바구니는 나의 가득 찬 옷장처럼 한가득이다.
채움의 미학은 빠르다.
(결재와 배송도 빠르다)
이 가득 담긴 옷들을 내 집으로 데리고 오려면, 자리를 마련해 둬야 한다.
내년에 입어야지, 살이 빠지면 입어야지, 이건 누구에게 선물 받은 거지, 이건 비싸게 백화점에서 산 옷이야, 이 옷은 예뻐서, 이건 기본 스타일이지, 등 온갖 버릴 수 없는 핑계가 옷마다 걸려있다. 그 핑계들은 버림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준다.
버림의 무감각이 채워놓은 가득 찬 옷가지들.
애초에 채우려 하지 않으면 버릴 필요도 없을 터인데, 이렇게 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이 없다"라며 새로 채우고 버리고를 반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