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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May 10. 2023

나를 위해 존재하는 월차


오늘은 나를 위한 플렉스 FLEX


대한민국 성실한 직장인이 한 달 꼬박 만근을 하면 한 개씩 부여되는 유급 휴가, 우리는 월차라 부른다.

평일 하루, 모든 사람들이 직장을 가고 학교를 가는 평일에 나만 뒹굴 뒹굴 쉴 수 있는 꿀맛 같은 월차를 내는 우리의 이유는 다양하다.


나 같은 주부( 나일론 주부이긴 하지만)인 경우는 각종 집안 대소사가 있거나, 병원 검진이 있거나, 은행이나 관공서 등의 업무를 해야 하거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할 일이 있거나 또는 아이들 학교 상담이나 행사가 있을 때 월차를 낸다. 즉, 회사 출근으로 할 수 없던 가사 업무를 하기 위해 월차를 내는데, 이런 경우는 하루 휴가이긴 하지만 근무하는 날 보다 더 바쁠 때가 많다.

이런 경우, 진정한 휴가는 아닌 셈이지.


또 다른 이유는 지인들과 혹은 가족들과 하루 당일치기 근교라도 여행을 가기 위해서 낼 때도 있다.

꽃놀이 철인 봄이나, 단풍구경 하러 가는 가을이 오면 , 마음이 들떠 가만히 사무실에서만 앉아 있을 수 없는 시기가 온다. 그렇다고 주말 나들이를 가면 사람들이 북적북적 붐벼 제대로 즐길 수 없으니, 과감히 하루 평일 월차를 내고 지인들과 혹은 가족들과 가벼이 하루 당일치기 콧바람을 쐬기 위해 휴가를 내기도 한다.  이건 전자의 경우 보단 진정한 휴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왔다 갔다 왕복의 걸음에 피곤함이 쌓일 수 있으나, 매캐하고 답답한 빌딩층의 공기로 가득 찬 나의 폐 속에 피톤치드 가득한 맑은 공기로 리필되는 하루 시간은 진정 보람된 휴가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나를 위한 진정한 휴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만이 존재하는 하루다.

나를 위한 플렉스, flex.


( * Flex - 젊은이들이 많이 사용하는 단어더라. 힙합, 랩에서 주로 쓰이던데, 돈 자랑 또는 자기 과시를 한다는 뜻으로 쓰이더라고... 나도 따라 써본다. 젊은이들처럼, 훗!)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토스트 하나와 커피 한잔을 내려 먹고, 칫솔과 샴푸 등을 넣어 목욕 가방을 챙긴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근처 찜질방이나 목욕탕을 찾아간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세신사 이모님이 얹어주는 오이팩의 신선한 초록 향기를 맡으며 누워 있노라면 세상 신선놀음이 이것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느냐.  플렉스 flex.


목욕을 마치고, 시원한 바나나 우유 하나 마시면서, 근처 맛집을 찾아 혼밥을 한다. 눈치 볼 것도 없다.

평소에 먹고 싶었던 음식을 먹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 입맛에 맞춘다고 못 먹었던 햄버거나 샌드위치를 사 먹을 때도 있다. 때론 간단히 라면에 김밥이나 떡볶이 등 분식 타임도 갖기도 한다.

얼마나 행복하다고. 플렉스 flex.


그리고 이왕지사 나온 김에, 한산한 백화점에 가서 이것저것 눈요기도 즐기다가, 필요할 듯 말 듯,  살듯 말듯했던 아이템을 한 두 가지 정도 골라 무이자 3개월 할부로 카드를 그어주신다. 카드 청구서는 내일 생각하련다. 우선 내 두 손에 쥐어진 쇼핑백에 행복을 느끼며. 플렉스 flex.


그러고도 시간이 남는다면, 근처 네일 샵 또는 마사지 샵에 들린다.  쪼글쪼글 손과 밋밋한 손톱에 알록달록 색을 넣어주고, 얼굴 마사지도 받으며, 한 시간 남짓 내 손과 얼굴을 업그레이드시켜 준다.  플렉스 flex.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다 보면 어느덧 오후가 훌쩍 지나와 있고, 다들 퇴근하거나 아이들이 집에 오는 시간이 얼추 된다.

저녁까지 약속이 있다면야 금상 첨화겠지만, 온전한 나를 위한 휴가엔 다른 사람을 끼우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을 해서, 가능한 약속은 뒤로 미룬다.


회사에서 퇴근한 것처럼, 휴가에서 퇴근을 하고 집에 온다.

개운하고, 반짝 거리는 두 손과 얼굴을 보며, 그리고 무언가 나를 위해 사들고 온 옷가지들이나 화장품 등을  정리하면서 내가 한 달 동안 일했던 보람을 잠시나마 스며들게 한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투자,  이것이 바로 플렉스 flex~~!!  바로 이 맛이지!


그래서 말인데, 이번달의 월차는 무엇을 하며 보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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