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동네 친한 지인 언니와 호프집에서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는데, 가방에서 그 언니가 립스틱을 꺼내고립스틱 솔을 꺼내어 슥슥 안쪽까지 긁어 바닥이 보일 때까지 사용하는 걸 보고 "아이고 진짜 알뜰도 하십니다."라고 했더니 나에게 사진 한 장을 쓱 보여줬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같았는데, 다 쓴 립스틱의 안쪽 깊숙이 온전한 립스틱 덩어리 하나가 더 들어있는 사진이었다. 마치꼭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윗부분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면 아래 과자 안에 그만큼의 아이스크림이 가득 차 있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하나. 낯설지만은 않은, 그렇지만 처음 본 사진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립스틱 그 안 깊숙이까지 내용물이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었던 터라, 사진을 본 순간 뭔가 묘한 배신감 마저 들었었다.
립스틱에 속았다.
한 개의 립스틱이지만 실제 속 내용물은 두 개 정도의 양이 들어있는 립스틱. 쉽게 말하자면 1+1과 같은 상품인거지...
화장품 회사는 이 사실을 공공연히 모른 척해 왔다는 소린데... 하긴 생각해 보니 어느 화장품 회사가 "립스틱 안쪽까지 내용물이 있으니 끝까지 다 쓰셔야 합니다"라고 광고를 하겠는가?!
내가 순진했네내가 몰랐네내가 알뜰하지 못했어
물건을 막 철저하게 아껴 쓰는 스타일은 아니긴 해도 어느 정도 성실히 쓰고 버린다 생각했는데, 립스틱 속에 저렇게나 많은 양의 내용물이 숨어 있을 줄 나는 상상도 못 했었고, 그때까지 그냥 돌돌 말아 올리는 립스틱 끝부분까지 도달하면 그저 미련 없이 버리고 했던 수많은 립스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까워라.
그 뒤에 나도 립스틱 솔을 몇 개 샀다.
그리고 얼마뒤 평소 쓰던 립스틱이 그 끝에 도달했고, 사두었던 솔로 삭삭 묻혀서 슥슥 바르기를 시작하니몇 날 며칠이 뭐야, 거의 한 달 넘게도 더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솔로 바르니 더 아껴 발리는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