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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Dec 07. 2023

젖은 낙엽

지난밤, 천둥 번개가 치며 우박과 함께 강한 비가 내렸다.

이제 가을을 마무리하라는 뜻이었던지, 아침 출근길 문을 나서니, 길바닥이 온통 나무에서 힘없이 떨어진

낙엽들로 뒤덮여 있었다.  나뭇가지와 낙엽들로 뒤덮인 아파트 아스팔트 마당을 바지런한 경비원 어르신께서

싸리 빗자루로 보행 통로를 쓱쓱 치우고 계신다.


그런데 밤새 비에 젖어 흩뿌려진 젖은 낙엽들은 좀처럼 빗자루에 쓸려 가지 않아 그개운치만은 않은 길이 되었다. 이대로 길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 다시금 빗질을 해야 빗자루질 한 보람이 느껴질 듯하다.


어쩔 수 없이 저벅저벅 젖은 낙엽 위로 걸어본다.

나의 구두 밑으로 바스락 거려야 할 낙엽 대신 축축하고 미끌거리는 낙엽 덩어리가 느껴진다.


젖지 않은 건조한 낙엽이었다면,

어쩜 내 구둣발 아래가 아닌 저 하늘 너머 어딘가 좋은 곳에 떨어져  풀과 나무와 꽃들에게 좋은 밑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지 않은 까슬한 낙엽이었다면,

어쩜 내 구둣발 아래가 아닌 저 바람결에 날아가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두 손 위로 뿌려져 늦가을을 만끽하는 웃음 속에 던져졌을지도  모르겠다 싶다.


무엇이 더 좋을까.

까슬거린 늦가을의 가벼운 낙엽 하나, 바람에 실려 날아가 늦가을의 추억 속으로 남을 그들의 운명이 좋을지.

젖은 낙엽으로 저벅저벅 밟히더라도 뿌리 끝 나무 아래에서 남아 있는 그들의 운명이 좋을지.


젖은 낙엽 정신

젖은 낙엽 정신이라고 들어본 적 있는가.

큰 바람에 날아가지도 않고, 싸리 빗자루로 아무리 쓸어내려도 휩리지  않버티고 버티는 대한민국의 강한 "월급쟁이"들의 정신력 또는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에서 끝까지 버텨 보는 사람들의 정신력을 말할 때 우스개 소리로 "젖은 낙엽 정신"으로 버틴다고들 한다.


나 또한 여태껏 회사 생활을 '젖은 낙엽 정신'으로 무장하여 버티고 있는 중이다.

까슬거리게 먼저 바람에 멀리 날아간 낙엽 동기와 선후배들의 소식을 간간히 듣자 하니, 큰소리치며 바람에 먼저 멀리 날아갔지만 결국 그들도 새로 떨어진 곳에서  '젖은 낙엽 정신'으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 바람이 불 날이 오겠지.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살아남으리라 매년 다짐을 하며 지내고 있다.


"습도를 잘 유지해서 끝까지 마르지 않는 낙엽이 되어보리라" 또 다짐을 하며, 저벅 거리는 젖은 낙엽에 내 모습을 비춰보는  출근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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