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저 그 길목 위에 서있었을 뿐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손을 마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들판 한가운데 핀 이름 모를 풀처럼
바다 한가운데 반짝이는 윤슬의 한 조각처럼
셀 수 없는 그 많은 피조물들 사이에
그냥 힘없는 존재로 붙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보따리 짐이 내게 왔다.
보따리를 풀어보니 처음에는 설레는 짐이라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레는 새로움이었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기쁘면서 설레기만 했었다.
그저 이 또한 내게 주신 선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버거운 무게에 다리가 무거워지고 허리가 뻐근해졌다.
심장은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려내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가벼이 하고 싶었다.
울었다.
흐르는 눈물만큼 그 짐이 가벼워만 진다면
하루고 이틀이고 몇 날이고 울 수도 있었다.
아니 울고만 싶었다.
억지로 도려내는 아픔
억지로 덜어내는 고통
억지로 떼어버리는 슬픔
그래야 가벼워지겠지
그래야 덜 힘들겠지
그래야 처음의 설렜던 마음이
그나마 덜 퇴색되어 마음 한구석에 오래도록 남아있겠지,라고.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을 돌이켜 보는 날이 온다면
그저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편히 내려놓고 말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그저 지나가는 바람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