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의 농도

생활 성서 3월호 기고글

by 라라

※ 본 글은, 생활성서사의 월간 <생활성서> 3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본당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는 나는 초등부 친구들과 매주 주

일을 함께 보내고 있다. 지난 대림 시기, 주일학교 합동 판공성사를 앞두고

학부모님 단톡방에 이런 공지를 올렸다.


"찬미 예수님- 마음의 유리창을 닦는 시기입니다. 깨끗이 닦아 주님께

더욱더 맑고 투명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이번 주 우리 친구

들의 마음의 유리창을 깨끗이 청소해 봅시다."

그랬더니 한 어머님께서 이렇게 질문을 주시는 게 아닌가.

"선생님, 청소 도구는 어떤 것으로 준비하면 될까요?"


초등학생들에게 '고해성사'는 너무나 어렵고 또 이해하기 힘든 교리다.

어떻게 설명해야 아이들이 고해성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불현듯 햇빛이

투과되는 유리창 이미지가 떠올랐다.

'맞아. 청소를 자주 하지 않은 유리창은 먼지와 티끌이 가득해서 그 빛도 맑지 못하지. 근데 자주 청소한 유리창은 아주 깨끗해서 티끌 한점, 먼지 한 둘도 금방 눈에 띄잖아.

그 유리창을 통과하는 빛도 그만큼 투명하고.'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고해성사는 마음의 유리창을 닦는 일이었다. 우리 마음속에 쌓인 먼지를 얼마나 자주 닦아 내느냐

에 따라 하느님께 다가가는 우리의 모습도 달라지는 듯했다.


초등부 친구들이 합동 판공성사를 보는 날이면 아이들의 모습이 다르듯

고해성사의 농도 또한 다름을 느끼게 된다.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이들에게 십계명에 따른

양심 성찰 지문과 고해할 내용을 적을 종이와 연필을 주고 나면, 아이들은 마치 시험 치듯 엎드려

무언가를 가득 써 내려간다. 반면 무엇을 썼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쓰고는 당당하게

고해소 앞에 줄을 서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성찰하고 죄를 고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그 과정이 어떻든 맑은 눈망울만큼이나 깨끗이 닦인 유리창과 같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다 나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애써 옆 동네 성당의 고해소를 찾을 만큼 죄가 부끄러운 나는 어쩌면 먼지 가득 낀 유리창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해성사로 그 먼지들이 한 번에 털어질 것이라 내심 기대하는 나의 이 신앙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오만한지...


지금은 사순 시기다. 그사이 먼지 가득 낀 내 마음의 유리창을 다시 닦는 시간.

고해의 농도는 오직 하느님께만 비춰지는 색깔이며,

그 용서의 깊이 또한 하느님만이 측정할 수 있는 무한의 사랑일 터.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 고해와 보속의 누적된 시간이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이 되고 있음을 마음에 되새기며, 이번 사순 시기엔 본당 고해소에 앉아 나의 유리창을 하느님께 기꺼이 맡겨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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