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이가 허덜시리 새끼도 마이 낳는다. 느그 한 마리 키울래? 한 마리 데리고 가그라"
나의 첫 고양이, 양고
아마 9살 때쯤이었나보다.
여름방학 시골 큰 할머니댁에 갔을 때,
시골집 마당에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아 있었다.
워낙 번식력이 좋은 고양이들이니 새끼들이 많아 골치 아팠던 할머니께서
이때다 싶어 우리에게 "한 마리 데리고 가라" 하셨다.
그 시절엔 반려 동물의 개념도 없었고,
아파트라 반려 동물 키우는 게 익숙지 않았지만,
엄마 아빠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았던 9살 막내딸의 간절한 눈빛을 읽었는지,
그날 아기고양이는 작은 상자에 담긴 채 우리 집으로 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나는 나의 첫 고양이.
이름이 "양고"였다.
( 오빠가 지은 이름이었다. 참 단순했지. 고양이를 거꾸로 해서 양고 )
검은색 얼룩무늬를 가진 고양이었고,
볼 옆에 검은 점이 있던 고양이였다.
고양이 용품이란 게 없던 그 시절이라
밥이나 간식은 사료가 아닌 우리가 먹다 남은 생선이나 밥반찬등을 먹였고,
장난감이 없으니 빗자루나 맨손을 슥슥 왔다 갔다 하며 사냥 놀이를 했고,
학교 갔다 오면 내 방 옷장 안에서 곤히 자고 있던 ,
너무나 귀엽고 예뻤던 작은 고양이, 양고 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양고가 발정 난 거 같다며
과일집 가게에 있는 수컷 고양이와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우리 양고를 과일집에 맡겼다.
그 순진했던 어린 시절 나는 엄마를 믿었고 과일가게 사장님을 믿었다.
그 가게 사장님이 우리 양고도 잘 돌봐 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양고가 결혼하면 새끼가 태어나는 것도 상상했었던 거 같다.
그러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과일 가게 고양이와 알콩 달콩 잘 지내고 있을 거라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가보니 우리 양고는 없었다.
아니 "우리 양고만" 없었다.
언니와 오빠랑 같이 가서 따졌지만,
과일 가게 사장님은 모르겠다 하셨다.
그 과일 가게 고양이는 가게를 잘도 지키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날 저녁, 우리 삼 남매는 울고 불며 플래시 하나를 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양고야~양고야~"하며 찾아 헤맸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의 첫 고양이, 양고의 마지막.
아직도 나의 머릿속에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강아지 보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는 거 같다.
어른이 되어 가정을 꾸리고 나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커가던 어느 날,
양고 같은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에 왔다.
나의 9살, 그해 여름처럼,
우리 두 아들들에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여동생이 생긴 것이다.
한없이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에서
세상 행복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오래도록 머물다 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