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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류 Mar 03. 2023

수박 먹는 조카

그 해 여름 무지 더웠다.

멕시코에서 태어난 2살 배기 막내 조카가 한국에 잠시 놀러 왔었다.

겨우 2살, 아랫니가 겨우 난 2살 배기 먹성은  다 큰 어른만큼이나 어찌나 좋던지.

자기 얼굴만 한 수박을 덥석덥석 잘도 베어 물어 맛있게도 먹는다.




취미 생활을 하려 마음먹으면, 보통 다들 장비부터 준비를 하더라.

장비빨을 세운다고 하지.


필라테스는 레깅스를,

자전거는 자전거와 헬멧, 그리고 쫄쫄이 바지,

골프나 테니스는 골프채와 테니스채를 멋들어지게 살 것이고,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은 악보나 건반을 준비하겠지.


무엇보다 그림이란 취미는,

무한가지의 미술 도구와 재료로 아마 "장비빨을 세우기"엔 최적화된

취미가 아닐까 싶다.


한참 드로잉 연습에 심취해 있을 때,

이것저것 다 해보고픈 마음만 앞섰던 나는

인터넷 화방을 돌아다니며 재료와 스케치북등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이건 뭘까, 이건 어디에 쓰는 걸까, 이렇게 그리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이렇게 조금씩 하루가 멀다 하고 사 들인 도구들이 책상에 쌓여갔다.

진정한 장비빨을 멋지게 세웠었지.


그중에 수채화 색연필의 매력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다.

쓰는 방법이나 기법도 몰랐다.

그저 쓱 그리고 물을 쓱 칠하니, 조금 "멋 낸" 수채화 그림이 나오는 게 아닌가.


서툰 그림이지만 "장비"가 세워준 조카의 그림.

새언니에게 보내줬더니, 한동안 새언니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이 그림으로 몇 달 동안이나 바뀌지 않았었다.


이것저것 시도해 준 나의 "장비들"에게 고마웠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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