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궁금하다.
매일 거울로 보는 얼굴이지만,
한 번쯤은 그려보고 싶었다.
색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나름 제일 "예쁘게"찍혔다고 생각되는
사진 한 장을 골랐다.
슥슥슥
슥슥슥
이 정도면 다 됐다 생각하고 그린 얼굴을 봤다.
좀 어색하다.
눈도 훨씬 크고 둥그렇다.
코도 좀 오똑한 거 같고, 콧망울은 실제 내 콧망울 보다 좀 더 둥그스름한 거 같다.
입술은 왜 이렇게 크지?
팔도 가느다랗다.
정말 내 얼굴인가 싶을 정도로,
사진 보다 "훨씬" 예쁘고 귀엽다.
주름도 없으니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기까지 하다.
이 그림 속의 여자가 정말 나란 말인가?!
순간 필터 카메라가 생각났다.
내 손이, 내 색연필이, 은연중 나에게 "필터"를 씌워줬구나.
요즘 흔히들 쓰는 필터 카메라.
세월이 흐르면서 얼굴에 시간의 흔적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니 그냥 일반 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피부색도 칙칙한 거 같고, 잔잔한 주름이 일부러 줄을 그어 놓은 듯하다.
그런데 필터 카메라로 찍으면 세상 뽀얗고 이쁜 얼굴이 된다.
필터에 익숙해진
나의 눈과 손이
자연스레 그림에 마저도 필터를 써줬구나.
스스로 "내 얼굴"이라 그렸으니
안 닮아도 이건 분명 나다.
필터를 씌운 폰 사진 속의 내가 나인 거처럼.
*나 홀로 드로잉 연습에 한참 이었던 2020년도 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