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할 것

by miu

파리에 사는 동안 내 힐링 스폿은 파리 시내가 아니었다. 파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지역이었다. 난 주말이면 혼자 버스와 기차에 올랐고 가급적이면 파리 시내와는 멀리 떨어진 곳으로 나만의 여행을 떠나곤 했다.


내가 자주 찾던 곳은 샹티이 고성과 베르사유 궁전이었다. 내게는 유효기간 2년인 프랑스 문화부에서 발급해주는 사진이 부착된 카드가 있는데 이 것 하나면 몇 군데를 제외하곤 프랑스 전역 박물관, 미술관 어디든 횟수 제한 없이 무료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었다. 보여주기만 하면 무조건 바로 들어갈 수 있는 프리패스 카드였다. 문화부에서 일하는 현지 친구 덕분에 승인 후 발급받을 수 있었다. 역사를 좋아하는 내게 이 카드는 특급 카드였으며 행운의 카드였으며 요물이었다.


그 카드 덕분에 베르사유 궁전을 제 집 드나들듯 다닐 수 있었다. 아마 이 카드가 없었다면 매번 입장료가 부담스러워 자주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난 한동안 마음이 허하고 가라앉고 답답할 때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을 때 고민하지 않고 베르사유로 향하는 메트로에 올랐다.


나는 곧장 갈 수 있는 RER기차 대신 늘 9호선 Pont de Sevres역에서 내린 후, 171번 버스를 타고 Palais de Versailles에서 내렸는데 사실 베르사유 궁전은 하나의 목적지였을 뿐, 파리와는 전혀 다른 외곽지역의 설명할 수 없는 그 평범하고 조용한 정취 속에 시간을 보내다 가고 싶었다. 베르사유는 내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들르는 장소였다.


워낙 자주 오다 보니 길을 익히게 됐고 조금은 더 많이 걷고 싶은 날은 몇 정거장 전에 내려 베르사유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외곽지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현지 로컬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마주치게 된다. 나와 같은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내겐 힐링이었고 창 밖 풍경의 자연과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듯한 집들과 건물들을 보고 있자면 마치 16세기, 17세기로 돌아간 듯한 그런 기분이 나는 그리도 좋았다.


무엇이든지 새 것보다 옛 것이 좋은 나는, 프랑스 외곽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 그 자체가 옛날 옛적으로 돌아가는 과거로의 여행이기도 했다.


파리에 사는 동안에도 난 끊임없이 방황했는데 그때 내가 했던 생각은 그래, 마음껏 방황하자. 방황할 것. 또 방황할 것.이었다. 괜찮다. 네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어디 한 번 맘껏 방황해보자. 괜찮아.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의 나만의 잦았던 여행 생각이 난다. 그리울 만큼 소중하고 값진 나만의 시간이었고 지금은 역사가 되었다. 최대한 그날의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고 그날의 햇살을 온몸으로 맞이하려고 노력했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고 때로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한두 시간을 앞만 보고 걷기만 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한 십분 십오 분쯤 걸어 나오면 역 앞에 작은 스타벅스 하나가 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엔 꼭 그곳에 들러 창밖이 훤히 보이는 구석의 작은 공간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생각을 다시 정리 한 뒤 역으로 향했다. 그렇게 난 주말 하루를 온전히 그곳에서 보냈고 내가 이렇게 살아있음을 오롯이 느껴야지만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미션 하나를 완수한 듯한 왠지 모를 안도감은 물론이었다.


내가 가장 애정 했던 곳은 샹티이 고성이었다. 베르사유와는 완전히 다른 샹티이 고성은 장관이었으며 화려하기만 한 베르사유보다는 샹티이 고성이 진짜 프랑스 같았다. 샹티이 고성으로 가는 길은 꽤 복잡하고 어려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착만 하면 내게 설명할 수 없는 황홀감과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샹티이 고성을 찾았던 1월의 어느 날, 그날은 비바람이 아주 심하게 몰아치던 날이었다. 샹티이 고성으로 가는 길은 인적이 굉장히 드문 길인데 날씨 탓인지 괜스레 겁이 났던 것도 사실인데 그래도 왔던 길이기에 투벅투벅 걸어갔다. 샹티이 고성으로 가기 전 중간 즈음엔 귀족이 살았다는 작은 성이 있는데 그 성을 둘러볼 때면 넷플릭스나 영화에서 본듯한 고전 멜로 속 여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인기척이 전혀 없는 허허벌판의 한가운데에 홀로 길을 걷는 그 기분이란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고 난 그 길을 정말 많이 애정 했고 걷고 또 걸었다. 옛사람들의 생활도 머릿속으로 상상해보기도 짐작해보기도 하면서 난 그렇게 인간의 삶과 생애, 그리고 현재의 나를 생각하며 내 안의 감정을 다스리려 애썼다.


비바람이 훤히 몰아칠 때 잠시 몸을 피했는데 피한 공간마저 역사 속의 공간이었으며 바람소리, 빗소리, 비바람에 흔들리는 수풀과 나뭇가지들의 소리 그 모든 게 한 편의 영화 같았고 이런 감정과 기분을 느낄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길을 찾아가다 보면 어김없이 결국엔 샹티이 성으로 도착하게 되는데, 입구에서 저 멀리 보이는 샹티이 고성을 잠시 동안 서서 바라보는 게 일이었다. 숨을 고른 후 넋을 놓고 그 분위기에 젖게 내버려 두는 일, 내 스스로에게 주는 그날의 선물이었다. 자꾸 집을 나가는 내 마음을 잡으려 출발한, 방황하는 내 마음을 어찌할지 몰라 출발한 나의 여정엔 늘 내가 생각한 그 이상의 것들을 내게 주었다.


방황할 것. 충분히 방황할 것. 내가 그랬듯 누군가가 내게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말해 줄 수 있을 만큼 난 방황이 가진 힘을 알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방황의 시간은 필요하다. 크기나 속성이 다를 뿐 방황은 내 안의 나를 만나게 해주는 하나의 길이 되어주기도 하고 그 방법 역시 무엇이 됐든 이 방황을 다독여줄 자신만의 여정 혹은 여행을 떠나보는 일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방황은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깨달은 건 방황이란 내 인생에서 치명적이거나 대단히 큰일이 아니라는 것. 고로 피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다는 것. 내 안의 내가 나를 좀 들여다봐 달라고. 내 말 좀 들어보라고. 나를 좀 봐달라는 신호라는 생각이다.


언제 또 그 시절 그때의 그 코스대로 가 볼 수 있을까. 샹티이 고성을 다시 찾을 날이 또 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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