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랑 언니

by miu

마랑 언니를 만났다. 이자벨 마랑 정확한 발음은 마헝이다. 팔레 루아얄에서 샤넬, 루이뷔통 등 유명 패션쇼와 전시 담당 매니지먼트 일을 하고 있는 친구 제시카 덕분에 그녀가 매니징한 이자벨 마랑 패션쇼에 초대받게 됐다.


패션업과는 전혀 다른 일에 종사해 온 내겐 무척이나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행히 이자벨 마랑 브랜드는 한국에서 들어본 적이 있었고 디자이너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다.


티비에서 보던 런던, 파리, 뉴욕, 밀라노 패션위크 풍경을 보노라면 그런 곳은 그저 유명한 셀럽이나 인플루언서들만 갈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 친구 덕을 톡톡히 봤다.


팔찌 하나를 받았는데 올 어쎄쓰라고 써져 있었고(이 팔찌의 위력은 엄청났는데 이 팔찌만 있으면 백스테이지고 어디고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친구의 동료 프랑수와의 안내를 받아 쇼 시작 전 스테이지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백스테이지에도 안내를 받아 들어갔는데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고 재밌었다. 웁스 지지 하디드 아냐? 그녀 맞았다. 막상 실제로 보니 내 눈엔 그저 금발의 외국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떠한 아우라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백스테이지를 나오다 멋진 중년 여성이 저만치 서있는 게 아닌가. 마랑 언니였고 아우라가 대단했다. 잠시 스태프들과 서서 미팅을 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지만(원래 무식하게 용감한 부분이 많다) 무튼 지금 이 자리에서 이 언니와 꼭 대화를 나눠보고 가겠노라.마음 먹었다. 언제 또 마랑 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는가.


어멋 웬 걸. 마랑 언니가 내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를 향해 재빠르게 말을 걸었다. “하이” 지금 생각해보니 나 넘 귀엽지 않은가…


마랑 언니는 무척이나 상냥했다. 간략하게 내 소개를 마치자 마랑 언니는 환하게 웃으며 혹시 한국에서 우리 만난 적 있지 않냐고 내게 물었다. 낯이 익다고 했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고 내가 본인과 똑같은 핑크색 팔찌를 차고 있는 걸 보니 순간 내가 패션 관련 인사라고 생각했을 수도 착각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이 언니 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고 표정과 말투, 제스처 그 모든 것이 젊고 힙했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조차 이리도 친절하고 상냥할 수 있음에 그녀는 분명 어느 곳에서든지 그런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마랑 언니와 품격은 동격이었다. 마랑 언니는 메이크업은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염색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아름답게 멋지게 나이 들어감이 무엇인지 그녀를 보면 알 수 있다.


헤어지기 전, 날 꼭 안아주었고 둘이 사진도 흔쾌히 찍었음은 물론 내게 본인 사진을 예쁘게 찍어달라며 포즈까지 취해줬다. 그때부터 난 이자벨 마랑을 마랑 언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평소 부를 일은 없지만 티비에 가끔 소식이 전해질 때면 혼자 친한 척, 반가운 척, 오 마랑 언니! 이런다.


아무렴 어떤가. 내가 만나보았던 진짜 힙스터들은 인간적이고 겸손했고 따뜻하고 상냥했다. 고백하건대 명품도 브랜드도 뭐가 뭔지 잘 모르는데다 이자벨 마랑 숍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옷 하나 신발 하나 가방 하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랑 언니를 만났으니 꽤 운이 좋았다.


가끔 생각한다. 내 평범함에 비해 내 인생에는 참 예기치 못한, 개연성이 전혀 없는데도 잘 경험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기회들이 절로 생길 때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난 행복한 사람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 옆에 프랑스 배우 조나단 코헨이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매우 나이스했다.

농담처럼 나는 Are you famous? 그는 I don’t know라고 답했다. 그의 유쾌함과 위트, 여유에 감탄했고 괜히 로코 무비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다음날 친구 파비앙한테 어제 패션쇼장에서 조나단 코헨을 만났다고 하니 He’s my friend! 이런 우연이.


이 날 난 찐 멋쟁이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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