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 같은 시간

by miu

2년 만에 다시 찾은 마드리드. 제일 먼저 하고 싶었던 건 지난 스페인 여행 때 내 안식처가 되어 줬던 바실리카 성당을 찾는 일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한 공기도 그 짙은 냄새도 자리도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달라진 건 나뿐이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약속했던 다짐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음을 자책하며 고해성사를 했다. 그러곤 문을 조심스럽게 여닫으며 성당을 빠져나왔다.


톨레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마드리드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여를 달려 도착했다. 와우, 여긴 어디지? 시간이 멈춰 버린 도시 같아. 중세시대 그대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완전 멋지잖아.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여기야.


서양사 관련 책은 닥치는 대로 읽는 데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중세시대에 와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자연스레 중세시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했고 떠올렸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 E.H 카의 말이 생각났다. 8월 한여름 숨 막히는 따가운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톨레도 성벽으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었다. 물이 필요했다. 잠시 가게에 들러 2리터짜리 페트병을 집어 들었다.


고요했고 차분했고 성스러웠다. 톨레도의 그 모든 것들이.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이 도시, 톨레도에 사는 기분은 어떨까. 성벽에 다다랐고 성벽 한 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톨레도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필름의 파노라마 같았다.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평생 잊을 수 없는 감정이었고 행복이었다.


성벽 한 자락에 두 다리를 모으고 팔을 웅크려 아래를 내려다보니 이런 호사가 없었다. 이 도시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선곡이 중요했는데 난 주저 없이 토이의 '거짓말 같은 시간'을 재생했다. 분명 사랑과 이별에 관한 노래인데 유독 이 노래 멜로디를 좋아해 마음이 우울할 때 자주 듣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자연스레 삶을 떠올리게 된다.


살랑 부는 바람도 한 몫했다. 그때 내게 불어왔던 찾아왔던 그 바람의 그 촉감까지 생생하다. 바람에 머리카락들이 흩날렸고 그마저도 바람이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1시간 동안 톨레도와 함께 나도 멈췄다. 어떠한 미동도 없었다. 그때 왜 이리 속으로 내 이름을 불러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들에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고 싶었던 거였을지도 모른다.


난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 이 풍경을 보고 있는 것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난 이렇게 가진 게 많은 사람인데 왜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하고 있는지. 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있는데 왜 남과 비교하며 자격지심이 내 안에서 나를 잠식하게 그냥 두고 있는지. 내 안의 나와 대화가 필요했다. 진솔한 대화가 이어졌다.


현대인으로 살면서, 먹고살기에도 바쁘기에 나 자신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여유는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미성숙한 존재여서 일수도 있지만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뇌하고 고민할 때를 돌이켜보면 난 어김없이 불안했고 우울했고 좌절했고 절망적이기까지 한, 기분이 바닥인 상태일 때가 많았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찾고 싶었다. 그렇게 톨레도는 내 기억 속에 내 마음속에 깊이 저장됐다. 요즘도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면 톨레도 성벽 위 자유로웠던 그때의 나를 소환하곤 한다. 잘 지내고 있니?


2018년 여름, 톨레도에서의 시간은 내게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다. 꿈같았고 아름다웠고 찬란하기까지 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언젠가 다시 찾을 생각이다. 그 자리 그대로 또 한 번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아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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