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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May 27. 2022

집착 없는 여자

근래 내가 가진 물건들을 보며 생각했다. 예전 같았음 새로 산 물건들을 처음엔 좀 아끼려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이제는 새로 산 물건은 아낌없이 바로바로 사용한다. 무엇이 날 변하게 했을까. 별 다른 건 아닐 테고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이 내가 쓰려고 필요해서 산 물건인데 아껴서 무엇하지? 이들도 다 쓰임이 있는 것인데 야무지게  잘 쓰는 것이 이들의 쓸모지. 아끼려는 마음을 툭하고 내려놓으니 어찌나 편하게 소위 막 잘 쓰게 되는 것인지. 결국엔 다 내 마음의 집착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난 그렇게 깨닫게 됐다. 


가장 최근에 산 것이라 하면 여름 샌들 하나, 소파 블랭킷, 노트북 파우치 정도인데, 샌들도 사서 그 자리에서 신고 오고, 소파 블랭킷도 구겨질까, 뭐 묻을까 하는 생각 없이 아주 잘 쓰고 있다. 어제 산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진한 블루 베이스에 가운데엔 큰 도라에몽 얼굴이 찍힌 노트북 파우치 역시 오히려 떼가 묻어 질들었으면 한다.


어제 문득 접시를 애지중지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린 찰나, 이것 역시 집착이구나. 내려놓으면 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이제는 그렇게 사소한 집착이나 어지러운 감정들이 올라오려고 할 때면, 바로바로 알아차릴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오히려 환영하며 잠시 머물다 가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제 옆 사람이 내 신발을 살짝 밟기도, 길 턱에 앞 코가 살짝 쓸기기도 했는데 순간 내 마음에서 앗, 이거 새 신발인데!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곧, 이미 신었으니 새 신발은 아니거든.이라며 순간의 집착 상태에서 벗어났다. 


비단 물건을 대하는 태도에서 뿐만이 아니다. 내 삶 전체에서 곳곳에서 나는 무집착 상태를 나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나름 의식하고 있다. 내 일상, 사랑, 인간관계, 일 등 우리의 삶 모든 곳에서 집착은 늘 우리 옆에 붙어 있어 불쑥불쑥 때로는 오랜 시간 머무른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알아차림, 그리고 알아차린 그 순간부터 내려놓는, 무집착 연습을 하는 것뿐이다. 


깨닫게 된 집착이란, 한 곳에, 한 생각에, 한 상황에 과도하게 에너지를 쏟는 일, 집중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무집착이란, 한곳에 집중된 에너지와 생각을 내려놓는 일, 물 흐르듯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일이다. 그걸 나름 심오하게 깨닫게 되자, 무집착 상태가 아주 곧잘 되고 있으며 집착할 게 뭐 있냐며 내 안에서 습관처럼 자주 이 말이 나온다. 효과 있다. 


어제는 절친 혜연 언니와 광화문에서 점심을 했는데, 언니가 점심 나오기 직전에 있었던 업무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였고 내게 그 이야기를 쉼 없이 하고 있는 상태였다. 언니는 왜 그럴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빨리 해결책을 줘봐.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언니는 꽤나 심각했고 진지했다. 나는 언니에게, "답은 언니 안에 있는 것 같아. 지금 언니의 부정적인 감정들로 인해 언니의 남은 오후를 망치지 말자. 언니의 생각을, 에너지를 온 신경을 조금 전 그 상황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 이미 상황은 벌어졌어. 이미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사라져 버린 일이야. 그곳에 집중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어 봐."라고 공감해줬다. 


퇴근시간쯤 되었을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한결 밝아졌고 "초아야, 네가 점심에 해준 말 정말 효과 있었어! 그 이후로 전화통화도 잘됐고 내 마음이 편해졌어. 진짜 별 거 아니구나! 고마워."라고 했다. 


최근 아주 중요한 일들이 조금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서도 마찬가지다. 예전 같았음 나는, 불안, 우울, 실패, 두려움, 좌절, 실망 등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감정들로 날 지독히도 괴롭혔겠고 그 감정들이 날 잠식하도록 했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전혀다. 정말 나는 "그래? 더 좋은 일이 생기려나? 더 좋은 기회를 맞이하려고 이러는구나! 안됐음 뭐 어때? 그렇다면 내가 직접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지! 어쨌든 이것도 땡큐."이런다. 


정말 거짓말 일도 없이 전혀 불안하지 않는, 마음이 턱 막히지 않는, 나를 보며 오히려 설레 하는 나를 보며 가끔은 나도 당최 나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낯설기도 하지만 그 낯섦이 내게 참 유익하다는 생각이다. 내가 기대했던 일이 다 와서 안된 최근 며칠 새 그 연락을 받고도 내가 전혀 개의치 않고 슬프지는 더더욱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내 생각과 에너지,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실패 혹은 안 좋은 일이, 내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한 몫한다. 그러다 보면 어떤 일에도 무슨 일에도 그래? 음. 오케이 그렇담 넥스트 스텝은?을 생각하지 그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된다. 


집착하지 않는 상태, 무집착의 상태를 습관처럼 의식하게 됐다는 것만으로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자유로워졌는지. 나는 요즘, 나의 긍정적인 기운과 에너지를 나를 만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진짜 나를, 내 안의 나를 소환하는 일이 이리도 간단명료한 것이었던가. 행복이라는 것이 풍요라는 것이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렇게도 쉽게, 가까이, 언제든지 찾아오는 것이었던가. 이마저도 알게 되어서 깨닫게 되어서 감사하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아주 자주 한다. 


집착을 내려놓으니, 깃털처럼 가벼운 내가 되었다. 오히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되고 내가 그려나갈 내 삶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쁘고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다. 집착하지 않는 여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사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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