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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29. 2022

다 지나간다

한 달이 속절없이 흘렀다. 분명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는데 나는 아주 몇 년 만에 찾아온 지리한 불안감 리고 그 불안과 우울감으로 인한 무기력함까지 더해 열병 아닌 열병을 근 3주 동안  앓았다. 끙끙 앓았고 지금은 어느 정도 심신이 안정되고 회복되었다고 생각되며 지금 나는 서울집으로 향하는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노트북을 켜고 내 생각을 글로 적어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밖 너머에는 고속도로의 가로등만이 간간이 보일 뿐 내 주변은 고요하며 어두컴컴하다. 다행스러운 건 몇 년 전의 나와는 다르게 나는 이 감정들에 끝끝내 화해한다는 점인데, 내게 이렇게 찾아오기라도 하면 그래. 왔구나.하고선 그냥 그대로 둔다. 빠지려 들면 애써 끙끙대며 사투하지 않고 그냥 빠져버리게 둔다. 그 안에서 마음껏 헤엄쳐 버린다. 지그시 그런 나를 관조한다. 사실 순간은 아주 힘들지만, 경험적으로 끝내 이겨낸다는 것을 내 몸도 마음도 익숙해졌는지, 장착이 됐는지, 저장이 됐는지. 조금 지나면 분명 괜찮아질거야.라고 확신한다.


이제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너무도 잘 알아서 이 감정들이 곧 나를 휘몰아치겠구나 싶으면 나는 내가 기분 좋아지는 일들을 찾는다. 곧 그런 감정이 스멀스멀 오겠구나.라는 느낌이 들자 나는 서둘러 짐을 쌌다. 백팩에 옷 몇 가지와 양말, 세면도구 등 필요한 것들만 챙겨 집을 나섰고 전주 언니네 집으로 향했다. 조카 바보인 나는, 조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바 당연한 선택이었다. 사랑과 배려 가득한 언니네 가족들만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행복해진다. 지금 가도 되냐는 내게 언니는 전화 너머 내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답했다. "지금? 저녁 차 타고 어서 와. 여기 와서 며칠 쉬다가. 언니랑 수영도 가고 하자."


며칠을 전주에서 지내면서 쉼을 고르고 내 인생 호흡도 조절해갔다. 외곽으로 나가 시골길을 걷기도, 차 창밖 너머 저 멀리 보이는 산들에 노랗게 빨갛게 물든 단풍을 보고 있자니 내 몸과 마음이 금세 맑아졌다. 이 내음새, 이 소리, 이 바람... 나는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진짜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만끽했다. "굳이 내가 서울에 살 이유가 있을까?" 나도 무던히 지쳤던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이런 이런 이런 이런 이런 것들을 하면 좋아하고 행복하고 기분 좋아지는 사람인데... 서울에서의 내 삶은 과연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까지 나는 피하지 않고 마주했다.


차를 타고 가던 중 언니는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네 마음이 편안한 곳이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가 싶어.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해." 그러고는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지리한 고독과 우울의 시간을 지나 조금은 성장했다고 생각하던 나였고 그 이후 늘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의식하려 노력하는 나인데 순간순간 이따금씩 오는 이런 감정들에 나 역시 고루한 인간인지라 속수무책 그대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시인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 내 태도가 이전과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런 내가 기특하다. 도대체 나의 방황은 언제까지. 어디까지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날 강하게 지배한 요 며칠, 파리 살던 시절 그런 감정이 일 때마다, 주말마다 찾았던 2019년 베르사유 궁전 근처의 숲길과 오솔길, 2018년 스페인 톨레도 성곽 위에서의 나의 다짐을 떠올리곤 하는데, 효과가 있었다. 조금씩 조금씩 내 상태는 회복되고 있었고 나아지고 있었다. 다시는 그 지리한 방황과 그런 류의 우울감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설령 와도 좋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로 내 몸과 마음이 잠식되는 것을 이제 나는, 그대로 두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솔직하게 냉정하게 아주 현실적으로 나를 객관화 시켜보자 했다. 뭐가 그리 불안한 건지. 지금 네가 느끼는 불안이 과연 실체가 있는 거니? 의심해보았고 또 의심해보았다. 게다가 나는 최근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라는 질문에 나는 몇 년 사이(5년 이상) 성취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실이 현재 내 삶의 에너지가 무너지고 있는, 회복탄력성이 낮아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는 데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지 말고 바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가령 이런 거다. 요가를 배우고 싶다. 내친김에 요가 자격증도 따 보는 건 어떨까. 일본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 그렇다면 독학하거나 학원을 등록해 바로 공부를 시작해보자. 요리를 조금 심도 있게 배워볼까. 그렇다면 쿠킹클래스를 찾아가서 배워보자. 테니스를 배워보고 싶다. 그렇다면 테니스 클럽을 바로 알아보도록 하자. 다시 내 안의 긍정 에너지가 스멀스멀 올라왔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달까. 몽롱했던 기분이 다시 선명해지자 나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감사일기에 수십 번 적어내려 갔다. 그 끝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런 사람인 게다."


오늘 오후에는 아빠와 점심을 먹고 위봉폭포로 드라이브를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송광사에도 들렀다. 그 몇 시간 새 자연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할 수 있냐며, 행복하기 있기 없기.라는 말을 반복할 만큼 나는 행복해했다. 완전하게 치유의 시간이었다. 단풍 낙엽이 떨어진 숲길을 천천히 밟아 지나가면서는 나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소리와 형형색색 알록달록 단풍 든 산의 절경과 풍경 그 모든 것이 그 순간만큼은 아빠와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한, 우리를  그들의 품속으로 열렬히 환영해주는 듯한 기분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래, 행복이란 다름 아니지.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렸지. 집착할 것 없어. 내 마음이 평온하다면, 평안하다면 그곳이 자연이도 행복이고 너만의 우주인 거지. 나는 그렇게 자연 속에서 평온했던 나.를 되찾았다. 나의 30대는 불안정했고 여전히 다이내믹하다. 소위 수족관을 나와 야생이랄까. 정글로 나와 이런저런 도전을 해보았던 호기롭던 시절의 나도 분명 나다.


내 마음이 어둠이었을 땐, 그 불안정함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사회에서 바라보는 잣대와 기준, 시선들로 점철되어있었다면 지금의 나는, 그렇게 바라보지도 판단하지도 의식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30대의 나의 불안정함이란, 그랬기에 다양한 값진 경험들을 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삶을 배웠고 느낄 수 있었다고, 나는 꼭 그랬어야만 했던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긍정의 의미이다.


한 번뿐인 인생, 그리고 언젠가 나는 결국 죽는다.는 이 단순한 진리를 나는 잘 알고 있음에도 왜 그리 자주 망각하는지. 나는 왜 그리 불안해하는가. 무엇에 그리 집착하고 있는가. 내려놓음. 수용하기. 나의 변함없는 화두다.


다시 한번 나는 내게 선언한다.

"두려워할 것 없어. 겁낼 게 뭐가 있을까. 집착하지 말자. 네 마음의 주인은 너야. 삶은 네 마음에 달렸어. 그렇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까. 계속 불안해할 거야? 우울해할 거야?이보다 더 한 시간들 속에서도 너는 몰입하며 견뎌냈어! 그러니까,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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