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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14. 2022

참을 수 없는 가벼움

Seoul 살이. 대학시절과 사회초년생이던 시절엔 버스와 지하철만 이용했고 아니면 한강시민공원 길을 따라 따릉이를 타거나 걸었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게 빨랐고 정시성이 있었고 편했다. 퇴사 후 소규모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짐을 싣고 다녀야 했기에 차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망설임 없이 차를 뽑았다. 그것도 새 차로.


심각한 오판이었다.(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그렇게 즉흥적으로 차를 사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도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지붕 뚫고 이불 킥을 찬다). 왜 새 차를 뽑았을까. 값싸고 쓸만한 중고차도 많았는데... 아니 그냥 사지 말았어야 했어...


2년 여 정도 지나서 소규모 일을 다 접고 나자 차의 쓸모가 없어졌다. 그동안 이리저리 해외로 많이 돌아다녔고 서울 집에 있는 날이 손에 꼽아졌다. 그 사이 내 차도 주차장에서 홀로 많이 외로웠으랴. 쨌든 또 다른 내 인생계획을 세우는데 차는 더 이상 불필요했고 중고차 시장에 내놓으니 속된 말로 똥값이 돼 있었다.


파리 시절은 진화된 뚜벅이였다. 파리 도시 자체가 워낙 작기도 했고 웬만한 거리는 1시간 이내로 걸을 수 있다. 그래서 교통비도 아끼고 건강도 챙길 겸, 주로 걷고 다닐 것을 감안해 파리 중심지에 자리한 3구로 집을 구했다. 집에서 10분만 걸으면 센강이었고 센강을 중심으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설정하면 길 찾기가 쉬웠다.


무엇보다 느릿하게 걸으면서 파리 골목길 구석구석마다 느낄 수 있는 그 낭만적인 풍경을 내 눈 속에 꾹꾹 담아야지.라는 마음이 컸다. 파리는 자전거, 라임(전동 킥보드) 천국이다. 걷기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파리에 살면서 더더욱 걷기 예찬론자가 됐다. 그렇게 차.는 나와는 아주 상관없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이곳에서 당장 내가 생활하기에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은 버스와 자전거와 걷기 뿐인데 이참에 중고차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기로 했고 왔다 갔다 하는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저렴한 가격의 중고차를 사는 게 합리적이었고 차를 샀다.

 

차를 판 게 벌써 작년이다. 그때 당시 내가 원했던 건, 지금 파는 이 시점에 손해만 보지 말자였다. 거래했던 중고차 사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지금 코로나 때문에 중동에서 차를 안 산다. 수출 길이 끊겼다.부터 시작해 지금 차 값이 굉장히 많이 싸졌다.등등 말이 길어지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난 지금 차를 당장 팔아야겠고 손해보고 싶지 않은데... 견적이 나왔고 이 정도면 지금 파는 게 낫겠다 싶어 바로 팔아버렸다.


차를 팔고 나니 내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불편할 것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오히려 걸을 기회가 더 많아졌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기 위해서는 최소한 걸어는 가야 하지 않은가. 목적지에 내려서도 마찬가지다. 건강까지 얻었다. 차를 없애니 내 불필요한 지출 역시 줄었고 현재 내 소비성향과 삶의 철학과도 아주 잘 맞았다.


요즘은 주로 버스를 애용하는데 맨 앞자리 오른쪽 한 좌석 자리에 앉으면 그 버스 한 대가 나를 위한 전용버스라는 착각을 일게 한다. 나를 실어다 주시는 기사님이 얼마나 감사한지. 또 재래시장 노상에서 채소를 팔고 퇴근하시는 할머님들의 모습, 중고등 학생, 대학생들의 모습 등 다양한 삶의 군상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자체도 내겐 힐링이다.


차를 제거하고 나니 언제든지 원하면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참을 수 없는 그 존재 없음의 가벼움. 홀가분했고 깨끗했다. 소유에서 자유로운 자, 부자다. 나 차 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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