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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14. 2022

공간의 용도

베오그라드. 세르비아의 수도이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의 고향이기도 하다. Beograd 또는 Belgrade... 몇 년 전, 내가 머물렀던 곳이자 내 지나간 사랑이 머문 자리이기도 하다. 내가 머문 집은 베오그라드 중심부지만 고즈넉한 주택 건물들이 즐비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이 코 앞이었다.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 후 발코니를 나서면 우뚝 솟은 나무들이 바람에 춤추는 소리에, 아침마다 날 깨우던 새들의 지저귐에 그 순간 만큼은 마치 숲 속 안에 살고 있는 마법에 걸린 공주가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멋진 공간이었다. 맞은편 너머에는 골목 한가운데 작은 분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집 주변 곳곳에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그런 낭만적인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집과 그 동네는 매일매일 날 설레게 했다.


내 옛사랑은 잘 지내고 있겠지? 나와는 6살 차이가 났다. 그이의 모습도 지금은 조금 달라졌겠지? 나이보다 젊고 멋스럽고 세련돼고 지적여 보였던 그이도 세월은 어떻게 하지 못하고 있겠지? 그이의 누나 아나와 조카 밀라, 그이의 부모님도 모두 안녕하시겠지? 등등. 내게 한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곰살궂던 그의 가족들이 생각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모닝커피를 하다 잠시 그 시절 그때 아주 치열하게 열렬히도 사랑했던 그이를 떠올렸다. 그땐 그랬지... 내가 그와 결혼을 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주 잠깐 스쳐 지나간 생각일 뿐이고 이미 지나간 일이기에 부질없지만 늘 그렇듯. 그런 생각이 잠깐 들수도 있지 뭐 그러나.싶다.


파리 살 때 아쉬웠던 점 하나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생각보다 내 취향 껏 내 공간을 가꾸고 살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엔 후덜덜한 집세를 내느라 생활비 전체를 아껴야 했던 시절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소하게 자잘하게나마라도 조금 더 나답게 꾸며 살아볼 걸.하는 아쉬움이 있다.


서른 중반의 나는, 공간을 가장 중요시하게 됐다. 크기는 상관없다. 개인적 취향은 되려 작은 공간이 내게 꼭 알맞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 이어야지만이 심플하고 단순한 내 살림들을 배치할 수 있다. 5월 내가 새로 이사한 이 집은 작다. 나 혼자 살기에는 크게  불편함이 없는데 솔직히 말하면 이전에 살던 곳이 훨씬 더 좋았고 내 마음이 편안했고 창문을 열면 큰 나무와 수풀들이 보였고 공간도 코지 했다. 그 집이 다시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지금 내 공간에 어떻게서든 마음을 붙여보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렇담, 이미 짜여진 구조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내가 이 집을 본래 내 집처럼 내 옷처럼 꼭 맞게 느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끌리셰하지만 내 취향들과 소품들을 나만의 방식과 스타일과 개성으로 배치하고 정열하고 놓아두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내 의식의 흐름과 방향과 속도가 달라지면서 내 삶에 필요한 살림살이들, 소품들도 그와 맞게 단순해지고 조촐해졌는데 필요한 것들만 놓아두고 불필요한 것들은 나누거나 모두 버렸다. 내 집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 마음이 설레지 않는 물건이 아직까지는 없다. 그때그때 잘도 비우기도 해서이기도 하다.


이런 삶을 꾸준하게 지속하다 보면 물건을 함부로 소비하는 일이 없게 되는 것은 물론(사실 새로운 물건을 사들이고 싶은 마음이 마법처럼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신기한 현상일 따름이다) 결코 진중하게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어느새 너무도 자연스레 친환경적인, 자연친화적인 삶이 되어 버린다. 그런 일상에서 오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나무로 된 물건들이나 흙으로 빚은 도자기들이 요즘 자꾸 내 마음을 훔친다. 내 살림살이라치면 주변인들이 보면 놀라곤 하는데, 크게 눈에 뜨이는 거라곤 2인용 소파와 베드 정도다. 이마저도 난 전혀 불편함이 없다. 새로운 가구를 사들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나는 원래부터도 빈티지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물건이든 공간이든 그것들만의 스토리와 역사가 있는 것에 홀딱 반하는 성미를 지녔다.


내 공간을 위해 내가 나름 지출을 하는 곳이 있다면, 조명과 침구류다. 조명 하나면 어떤 공간이든지 간에 그곳을 코지하게 로맨틱하게 만들어버리는 마법이 있다. 조명에 신경 쓰는 이유다. 침구류는 H&M홈이나 자라홈이 내게 아주 알맞다. 내 공간이 작지만 나름 코지 할 수 있는 건 내 취향이 고스란히 담긴 배겟잎이나 블랭킷, 쿠션 커버라는 생각이다.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소품들의 질감 또한 중요하다.


공간은 철저하게  나다워야 한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이십대 사회 초년생이던 시절, 내 공간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그 중요성을 진작에 깨달았더라면, 그때 당시 마음 강하지 못했던 나약했던 나를 조금 더 자주 일으켜주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달라졌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만큼. 공간이 나에게 주는 그 의미와 가치는 설명할 수 없을만치 거대하다.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그리 살면 된다고. 나는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 조금은 자책하고 있는 나를 현재로 데려와 토닥인다. 결혼을 하게 되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공간인데 어찌 내 취향만 고집할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나의 취향을 골고루 섞어 둘 만의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은 또 어떤 색다른 재미와 설렘을 줄까.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더 자주 든다.


내게 집은 집이 아니라 공간이다. 그냥 뭐랄까. 1 studio.라는 말이 내겐 적확하다. 요즘 같이 부동산 부동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자면 내가 집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육신이 먼 훗날 흙이 되어 바람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갈 때까지 남은 삶을 이런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갈 것이다. 공간을 내 나름대로 내 멋대로 해석해보자면, 공간은 내 취향과 내 멋과 내 기분과 내 태도와 내 분위기와 내 철학을 담은 그릇과 같다.


요리할 때 행복한 사람, 내 공간을 내 취향대로 가꿀 때 행복한 사람... 요즘의 나는, 서른 중반의 나는 나를 꽤 잘 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면, 이렇게 나도 내 영혼도 성장하고 있구나. 나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구나.싶다.


공간이 주는 에너지와 기운은 내 삶과 일상을 완벽하게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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