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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Oct 13. 2022

살어리랏다

고백하건대, 일주일 전부터 아주 지독한 우울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이런 정도의 기분이 든 게 처음인 걸로 보아 꽤 오랜만에 내게 찾아온 게 분명했다. 이전과는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기분을 곧잘 파바박 알아차린다는 것.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과 기분과 마음은 내가 아니다. 에고다.등등 무언가 부정적인 감정과 기운이 엄습해오려는 듯하면 나는 즉각 반응한다. 오호라. 너 또 왔니? 오케이. 일단 들어와. 마치 곧장이라도 소위 맞짱을 뜨기라도 할 듯한 태세다. 주눅들지 않는다.  


무튼 아무리 우울감을 알아차렸다고 한들 나도 미약한 인간인지라 내 몸과 마음 상태는 그곳에 빠지지 않는 법이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무참하게 그곳에 나를 맡긴다는 정도. 잠을 참 잘 자는, 숙면을 취하는 나이거늘, 며칠 째 계속 새벽 3시를 넘겨 잠이 들었다. 어젯밤엔 꽤 우울했고 새벽엔 심장이 쿵쾅쿵쾅 거리기도 했으며 온 몸이 아이스크림이 뜨거운 땡볕에 녹듯, 내 몸이 녹아져 내리는 듯한 기분에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초아야... 나는 그렇게 내 이름을 허공에 대고, 창밖 너머 밤하늘을 바라보며 무수히 외쳐대고 있었다.


내가 수시로 즐겨보고, 틀어놓는 프로그램이 있다. KTV에서 하는 살어리랏다.인데. 살어리랏다 속 사람들의 저마다의 삶과 가치관, 삶의 태도를 나는 사랑한다. 살어리랏다.를 보며 나를 위로하기도 공감하기도...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담, 나는 이불을 박차고 나와 노트북을 켰다. 내가 내린 처방전은 살어리랏다 프로그램을 보자.였는데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았고 차분해졌고 여러 편을 보고 나니 금세 평온해졌다. 다행이었다.


이번에 찾아온 우울감은 꽤나 독한 녀석이라는 생각인데, 이번 우울감의 원인은 분명 불안이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자.고 늘 생각하면서도 결국 또 이렇게 나는 불안과 우울감을 환영하고야 말았다. 이런 마음 상태일 때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어제도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과 사진의 용도. 두 권을 읽었고 오늘은 방황하며 이리저리 제 집을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내 마음을 어찌할지 몰라 이렇게 키보드에 손을 들었다. 다행히도 살 것 같다.


지난주 언니에게 선물을 받았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참 많았던 내 언니는,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것을 취미 삼아 배웠었다. 내가 예전부터 갖고 싶다고 했던 컵과 접시, 그릇을 언니가 선물로 건넸다. 감동이었으며 언니의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들어간 이 도자기 컵에 모닝커피를 담을 생각에 설렜다. 내게 아낌없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내 언니는(사실 만날 때마다 내게 쓴소리를 해주는 언니야말로 나를 잘 아는 사람이며 동생이 정말 이 세상을 건강하게  꿋꿋하게 잘 살아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는 걸.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낌없이 손수 만든 그릇가지들을 내게 내놓았다.


완벽하지 않으면서도 갖은 투박한 선과 흙이 살아있는 듯한 도자기 그릇에 요즘 왜 이리도 마음을 빼앗기는지. 언니가 만든 도자기 그릇을 보고 있자 하니 그들에게서 생명력이 느껴지는 듯하다. 물건 하나에도 애써 내 마음을 투영하는 나다. 요긴하게 아주 잘 쓰고 있다. 음식도 정성스레 도자기 그릇과 접시에 담아 먹는다. 그렇게 나는 사소하게 소소하게 단출하게 어떻게 해서든 내 감정을 헤아리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인정하나 그 끝은 이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삶과 일상을 더 깊게 혹은 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날 잠식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내 마음이 이래서였던지. 요즘은 눈부신 아침보다는, 어두컴컴한 밤이 좋고 어둠 속 내 집에 따뜻한 조명을 켜 두는 일이 날 더 위로하고 안아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사람은,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인생을 살고 있다.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나만 불행해질 뿐이며, 나의 속도로 나의 방향으로 진짜 내 삶을 살아가자.고 나는 이렇게 또 다짐한다.


밤기운이 꽤 쌀쌀해지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자니, 파리의 겨울과 그곳에서의 추억들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난다. 그때의 내 마음과 지금의 내 마음이 오버랩되기도 하면서. 파리지엔느이자 내 친구 제시카 생각이 났다. 그녀가 습관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C'est pas grave!"(상관없어!) 그리고 "so Jessica" "so Choah"...(무언가를 이야기할 때, 제시카 답다. 초아 답다. 이런 의미였는데 나는 그 말이 즉 나답다는 말과 동의어 같아 참 좋아했었다).


그래. 지금 네가 하는 뭔지 모를 불안과 걱정들... 근데 실체가 있니? 정확히 그려낼 수 있어? 실체가 없어. 아직 오지 않았고 영원히 오지 않을 일인 게 더 분명해. 왜 그런 감정들로 네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거니? 물론 그럴 수 있어. 근데. 이런 적이 한 두 번이었냐구. 결국엔 이 감정들 모두 별 거 아니었다는 거. 네 마음이  만들어낸 거였다는 걸. 허상이었다는 걸. 이제는 경험적으로 너무도 잘 알잖아. 며칠 째 잘 받아들이고 있고 곧 요녀석들 알아서 갈 것 같으니까 흔들리지 말고 네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돼.


나는 그렇게 내게 찾아온 불안과 걱정과 우울을 나만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나를 내가 믿지 않으면 누가 믿어줄까. 나를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줄까. 나를 내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껴줄까. 나를 내가 안아주지 않으면 누가 안아줄까. 갖은 넘어짐과 어리석음과 실수와 경험을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인생을 배워가고 있는 나는, 이 시점에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사랑하며 내 삶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고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꽤나 짠하면서도 사랑스러우면서도 귀엽다.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살어리랏다... 일부러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외쳐본다. 인생 아무도 알 수 없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알았지? 그러니까 뭐다. 밝게 찬란하게 긍정적으로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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