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법

by miu

어제 미리 사놓은 아몬드와 캐슈넛을 유리 밀폐용기에 가득 채워 담아놓았다. 과자나 탄산 등 주전부리를 원래부터도 잘하지 않는 나에게 견과류는 늘 훌륭한 주전부리가 된다. 아몬드, 캐슈넛, 피칸, 호두 등 견과류가 들어간 음식 역시 내 취향이다. 그래서인지 요거트에 견과류를 꼭 넣어먹는다든지, 피칸파이를 참 좋아한다.


풍성하게 담겨진 유리병 2개를 보고 있자니 견과류 하나에 내 마음도 덩달아 가득 채워진 기분이다. 마지막 한 개까지 야무지게 비우고 나서야 그곳을 다시 가득 채워야 좋은 성미탓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날 위해 다시 채워놓는 일.이라는 마음때문일 것이다.


비타민D를 챙겨먹는데, 약국에서 파는 아주 작은 카카오 캐릭터가 그려진 캔디를 오래 전에 사먹고는, 예쁘고 앙증맞은 틴 케이스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비타민D를 몇 개 넣고 가지고 다니는 용도로 사용했었다. 그러다 최근엔 견과류 2-3종류를 고루 섞어 담아 가방에 넣어 다닌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거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가끔 주섬주섬 하나씩 꺼내 먹을 때가 있다.


재질도 틴케이스라 뚜껑을 열고 닫을 때 나는 탁탁.소리도 재밌고 손가락으로 하나씩 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작은 것에 나는 진심으로, 찐 행복감과 기분좋음을 느낀다.

며칠 전, 단호박, 감자, 고구마를 사다놨는데 그러면서 생각했다. "역시 난 구황작물을 진짜 좋아해."... 단호박으론 단호박 수프를 해먹고(공덕역에 있는 닥터로빈 단호박 수프를 종종 먹으러 갔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감자는 매쉬 포테이토 혹은 감자채볶음을 해먹고, 고구마는 삶아서 자주 먹는다. 좋아하는 음식이 나름 확실하다는 것, 좋아하는 음식들로 내 배를 적당히 채우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내 기분과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다.


오늘 역시 뜨끈뜨끈한 따끈따끈한 바닥에 기대 앉아 있는 지금, 커피 한 잔과 함께 하고 있는 나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느 누구 부럽지 않다. 마치 신선놀음 하는 듯한 기분이다. 뭐든 내가 생각하기에 마음 먹기에 따라 내 상황도 달리 보인다는 것. 정말 맞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면서는 Rick Rubin과 Dr. Rangan chatterje의 대화를 들었는데, Rick 이야기의 핵심은 meaningful life, 의미있는 삶.이었다. 이어 최진석 교수님의 강연을 들었는데,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 일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을 놓지 않는 이유다. 의식이 날 지배하게 놔두는 상태를 경계한다. 의식하려 하고 늘 깨어있으려고 노력한다.


그때그때 스치는 단어나 문장들 혹은 주제, 소재가 떠오를 때면 메모 해두는 습관이 있다. 메모장을 들여다보다 며칠 전 적어놓은 흔들리지 않는 법.이라는 문장이 날 오늘의 글쓰기로 이끌었다.


흔들리지 않는 법... 개인적인 경험으론 지리한 방황과 내 안의 나와 치열하게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만나고 화해하면서 깨닫게 된 나만의 노하우랄까. 나만의 방식이랄까. 나만의 방법이랄까. 더 이상 쉽게 흔들리지 않는, 휘둘리지 않는 법을 터득하게 됐다는 설명이 맞겠다.


더는 힘든 시간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 더는 내 마음에 스스로 상처내고 싶지 않다는 것, 더는 내 마음에 고통과 괴로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런 감정과 기분으로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와 다짐의 발로이기도 하다.


흔들리지 않는 법.은 결국 내 안에 답이 있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나라는 사람은 가령, 어떤 사람과 있을 때 편안한지. 행복한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기분좋아지는지. 어떤 옷을 입을 때 나다운지. 어떤 헤어스타일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지. 가장 취향저격의 커피 종류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하면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을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내게 삶의 목적이란 무엇인지. 어디를 갈 때 기분 좋아지는지. 어떤 물건을 살 때 좋은지. 어떤 종류의, 성격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는 무엇인지.등등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씩 나를 알아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자 그럴수록 나.라는 사람이 더욱 선명해지고 또 선명해졌다.


그러다보니 그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지금, 혼자 놀 때 가장 재밌는, 혼자서도 잘 노는 내.가 되었다. 이 과정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줬는데, 덕분에 지금은 흔들리지 않는 내가. 혼자서 우뚝 설 수 있는. 비로소 "나"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를 만났다... 지금의 나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이자 애정하는 문장이다.

내가 생각하는 삶이란, 그 정의나 의미나 개념적인 측면에서도 이전과는 크게 변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 이 사실을 인지하고 의식하는 것 만으로도 실제 우리 삶은 크게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지금의 나는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는 일이 없다. 살면서 느끼는 것들이 이렇게 많아서야... 할 정도로 많아졌는데, 그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남들의 시선, 신경 쓸 일이 전혀 없다는 것." 스치듯 우연히 보았던 쇼츠 영상이 있었는데 길거리에서 만난 은퇴한 시니어들에게 이십대의 당신으로 돌아간다면 자기 자신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을 두려워 하지 말고 용기내 무엇이든 도전해 볼 것."과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끌 것."이라는 대답이 많았다. 공감했고 반대로 내 스스로에게 되묻기도 했다.


먼 훗날, 오십이 넘은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 과연 나는 지난 서른의 나에게 myself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내게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올까. 내겐 많은 여운이 남았던 영상이었다.


사실 살면서 흔들릴 때가 많다. 멘탈은 거센 파도같고 어떨 땐 갑자기 찾아온 변덕스런 기분, 혹은 우울감, 알 수 없는 불안으로 인해 하루 종일 내 마음이 바닥일 때가 여전히 있다. 그때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의 지속성과 주기가 이전보다 확연하게 줄어든 이유는, 의식적으로 깨어있으려고 하는 내 마음의 의지 덕분이다. 마음근육도 습관인 탓에 지리한 방황을 극복하면서 내 마음 근육도 촘촘하게 잘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크다.


의도적인 삶, 의미 있는 삶, 결국엔 그 목적의식은 다 하나라는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흔들리지 않는 법의 핵심은 의식을 내 스스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식이 내 몸과 마음을 잠식해버리는 순간 나는 어김없이 우울과 불안에 휩싸였다는 걸 너무도 잘 깨닫고 확신하게 된 지금, 깨어있기. 현재에 집중하기.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를 의도적으로 수시로 소환해 내 몸과 마음을 지키고 있다.


거창하지 않다.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쓰윽 하고 날 찾아온다 싶으면 혹은 이미 찾아왔다면, 우선 몸을 움직이는 것. 내가 하면 기분좋아지는 것들을 아주 사소한 걸지라도 기꺼이 해보는 것. 내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해주는 것. 너, 또 왔구나.하며 그냥 잠시 왔다 가라며 툭 놓아버리기, 의연해보기, 초연해보기, 남들과 비교하지 말기,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쓰지 말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기. 날 위한 만찬을 준비해보는 일...등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날 분주하게 하면 그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나만의 생각과 가치관과 태도와 철학이 확고해지면, 남들과 비교는 커녕 사사롭거나 사특한 마음이 날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결국 흔들리지 않는 법이란, "나를 안다는 것."과도 같다.


요즘 자주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남들의 시선이 뭐 그리 중요했던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이제라도 느꼈으니, 더는 내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흘러가는대로 무심하게 그렇게 여행처럼, 소풍처럼 살아보자."는 생각 그리고 다짐이다.


누군가 내가 50-60이 되었을 때, "20대 혹은 30대의 당신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의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라고 물어본다면 지금 마음 같아선, "Don't take your life too seriously." 인생 너무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마.라고 답할 것 같다.


죽음이라는 걸 선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삶이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고 소중하고 귀하게 다가왔다. 유한한 인간 삶에서, 시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절실히 깨닫고 있는 이 시점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습관처럼 훈련하는 일은 내게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이런 나로, 생각할 수 있어서, 사유할 수 있어서, 의식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감사하다.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니 그 감사함이 내 삶에 행복과 기쁨과 단단함과 의연함과 초연함, 유연함으로 배가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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