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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u Feb 04. 2023

낭만적인 하루를 보내는 법

오늘 아침 유난히 아침밥보다도 시원한 그러나 쌉쌀한 뒷맛이 끝내주는 녹차 스무디가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취향이 확실한데다 취향껏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음료에 있어서도 취향이 모호할리 없는데, 믹스 커피를 제외하곤 커피나 음료라 하면 요거트 스무디 아니면 녹차 스무디 딱 이 2가지를 즐겨 찾는다.


먹고 싶은 건 또 먹어주는 기쁨이 있기에, 눈뜨자마자 세수도 하지 않고 눈을 솔솔 비비가며 집앞 카페에 갔다. 오늘의 선택은 녹차 스무디. 오늘 하루 내게 주는 선물.이닷. 맛있게 먹자!하고선 돌아오는 길에 큰 빨대로 쪽쪽 빨아들였다. 차가운 아침 공기와 함께.


예상되는 맛이건만, 그 첫 한모금이 왜 이리도 기가막히고 코가 막힐만큼 맛있는지. 사러 나오길 잘했다며. 그렇게 토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녹차 스무디 하나에 기분 좋아질 일이 맞다. 추위는 다소 누그러진 듯하고 이러다 금세 봄이 성큼 다가올 것 같은 느낌에 내 마음도 살짝 설렜음은 물론이다. 아직 오지 않은 봄이지만, 생각만으로도 곧 돌아올 봄이 왜 이리도 기다려지는지...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고 봄은 봄다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겨울은 추운 계절답게 추운 지금이 충분히 낭만적이고 견딜만한 계절이라는 생각이다.


집으로 돌아온 직후엔 아침밥을 준비하러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이란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더욱 나다워지는 공간이다. 이사온 이곳 부엌은 작지만, 작은 부엌이 외려 지금의 나와는 아주 잘 맞다. 작은 공간이라 청소하기도 용이할 뿐더러 불필요한 물건일랑은 없게 되고 내게 꼭 필요한, 내 요리에 꼭 필요한 도구들만 단출하게 남아있다. 부엌에 갈 때마다 그런 심플한 모습에 꼭 나와 닮았다.며 자주 흡족해한다.


오늘 아침은 간단하게 먹을까.싶어 먹다 남은 사워도워를 오븐에 노릇하게, 바삭하게 구워냈고 갈릭과 버터로 만들어놓은 스프레드를 바르고 그 위엔 에그 스크램블을 올려 요기했다. 요거트에 맛땅콩 조금, 바나나 슬라이스 조금 넣어 볼에 담았다. 원목 플레이트 위에 각 접시들을 플레이팅 한 후 맛깔나게 먹었다. 식사에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어느 순간부터는 식사하는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됐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느끼게 됐다.


이전에는 지금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모를 정도로 허겁지겁 서둘러 먹기 바빴던 적이 더 많았다면 지금의 나는, 절대 서두른 법이 없거니와 내가 직접 요리한 그 음식에 대한 감사함과 각 식재료의 맛 하나하나를 그대로 느끼고 있다. 그끝엔 영민해진 내 미각과 마주한다.


여러의미에서 요리란,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날 살뜰히 보살피려는 내 의지이기도 하다. 원래부터도 요리를 좋아했지만 요즘 부쩍 그 애정이 짙어졌다. 인간에게 요리란, 결코 그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것과 내게 요리란, 내 삶의 가치관과 철학과 태도를 담는 그릇과 같달까. 요리를 할 때의 나는, 마치 창의적인 예술가 혹은 사유하는 철학자가 되는 듯한 기분을 자주 느낀다. 요리를 하는 행위란, 내겐 내 삶의 주인이 되는 행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무튼 사랑이다.


토요일이란, 희한하게 나에게 한없이 관대해지는 날이기도 한데 가령, 치즈 케이크 1개 먹을 걸 기분이다! 그러면서 2개 먹는 걸 허용한다든지. 어떤 날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날이 내겐 토요일인 것 같다. 그럴땐 야무지게 먹고 싶은 걸 먹어줘야 내가 힘이 난다. 고로 토요일에 부쩍 헤비하면서도 시간이 걸리는, 굵직한 요리를 한다. 완성된 요리를 테이블 위에 정성스러 예쁘게 차려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이미 낭만적인 사람. 낭만적인 여자. 낭만을 아는 여자.가 된다.


그렇게 난 매일 나를 위한 요리로 최소 1일1낭만을 만끽하고 있다는 설명이 맞겠다. 일전에 선물받은 녹시땅 바디워시와 바디크림이 있는데 둘 다 거의 바닥이 난 상태라 오늘 오후 싹싹 마지막까지 야물게 옹골지게 다 비우고 나서는 깨끗하게 물에 헹궈 건조시켰다. 조금 전 보니 어느정도 마른 상태라 천으로 안쪽까지 깨끗하게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고선 하나엔 주방세제를 가득 담아 보기 좋게 부엌에 두었고 다른 하나엔 아직은 조금 남은 샴푸를 가득 채워 욕실에 두었다. 케이스가 예쁘기도 해서 이렇게 해놓으면 별 건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곤 핑크 쿠션커버를 꺼내 기존 커버와 바꿔줬다. 귀찮거나 번거롭다고 느낄새가 없는 것이, 내 기분따라 쿠션커버 갈이를 하는 편이라 그 자체도 내게는 소소한 낭만이 된다. 결코 거창한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아주 소소한, 아주 자잘한 것들에도 의미를 담고 가치를 담고 낭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낭만이 별 건가.라는 낭만에 대한 무심함도 한몫한다.


낭만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이미 내 마음속에 내 곁에 머물러 있는데 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외면했을 뿐. 지금 나에게 낭만이란, 세상을 사는 맛.과도 같아서 낭만은 늘 나의 벗이다.  


오늘 아침 녹차 스무디 하나에도 나는 행복해했는데. 이 생각조차 얼마나 낭만적인가.싶다.


창밖을 보니 벌써 어두컴컴해졌다. 저녁은 모먹지... 어떤 식재료들과 어떤 상상과 조합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나 다워질 수 있는 그곳, 부엌으로 향한다.


낭만 한 스푼. 오늘 저녁요리에 듬뿍 쏟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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