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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by miu

오전에 온전히 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는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점에선 충분히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웬만해선 정해진 시간에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물론 아침밥을 꼭 챙겨먹어야 하는 성미 내지 습관을 갖고 있고, 책도 하루에 20-30분 정도는 꼭 읽는 편이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때문에, 또 손수 요리를 해먹기 때문에 늦은밤이나 아침 밥을 차리면서 갖은 채소와 야채를 프렙해 놓는 것도 빠질 수 없는 일과다.


믹스 커피 한 잔(믹스커피에 대한 사랑은 대학교때부터였는데, 이른 1교시 수업 직전 자판기 앞에서 뽑아 먹던 자판기 커피가 요즘 부쩍 그립다. 참 좋았던 꿈 많았던 나의 소녀 시절이 이토록 그리운건지도 모르겠다) 앙증맞은 미니 도자기 컵에 물은 보통보다 조금 적게, 진하게 구수하게 타먹는다. 오늘 아침 역시 이 믹스 커피 한 잔에 나는 행복해했다. 내겐 믹스 커피란 스타벅스 부럽지 않은 최고의 맛이다.


그래서인지 믹스 커피가 딱 1봉 남았을 때, 믹스 커피 통에 다시 채워놓는 일 역시 치즈를 채워놓을 때처럼 내겐 사랑이요, 즐거운 일이다. 오늘은 노트북을 들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가죽소파보다는 패브릭 소파를 좋아하는 취향에다, 유럽이나 미국 빈티지 스타일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나는, 패브릭이라면, 빈티지스러움이라면 뭐든 환장하는 성미를 가졌다.


이 시간에 노트북을 들었다는 건, 내겐 글 1편을 쓰겠다는 징후다. 글쓰기 역시 내겐 의무가 아니라, 내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일 때, 글 한 편이 쓰고 싶을 때, 내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생각을 재정비하고 싶을 때, 내 의지를 재차 다지고 싶을 때... 등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쓰고 싶을 때.쓴다는 점이다. 하루에도 두세번 일수도 있는 이유다.


음악까지 틀어놓은 상태라 무드무드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다 내 공간을, 내 집을 자연스레 빙 둘러보게 됐다. 단출하기 그지 없지만 내 취향대로 살림살이를 갖춰놓은 이 공간이 내겐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엄청난 집착이 있는 것은 아니고 나는 늘 그렇듯 무심하게 그러나 내 사랑을 고루 나눠주는 정도의. 내가 날 대하듯, 나는 내 공간을 대해준다. 어떨땐 심플한 내 집을 보며 나는 이토록 무심한 되어가고 있구나.싶을 때도 더러 있다.


몇달 전 이사한 집은 작다. 아담하다. 지난 집 역시 작았지만 지금 집보다는 컸고 모던했고 내가 좋아하는 주황등이 사방 곳곳에 있어 나름 도시적이고 세련됐고 도시적인 공간이었다. 지금 집은 저층에다 빈티지스럽고 투박하고 작고 내 마음처럼 무심한 느낌의 집이다. 그러나 굉장히 코지한 느낌인데, 일부러 이런 집을 찾아 오게 됐다. 집도 내 마음따라 가는 걸까. 지금 집은 내 마음과 꼭 닮았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혹은 화려하거나 휘황찬란한 집은 지금의 내게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나 그러나 내 안에서는 굉장히 비범한 사람인데다, 소박한 걸 좋아하고, 오래된 거, 옛 것에 관심이 많고 단출하고 심플한 삶이 내겐 가장 적확하면서도 날 편하게 한다는 걸 알아버린 차제에 나다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결심한 이유에서다. 그 흔한 밥통과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자잘한 가전제품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여러가지면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은 괜찮다. 나름 낭만있다.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1인 가구인데다 나 혼자 사는 집인데, 지금까지 살아본 경험상, 한 사람이 사는데 그리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 생각보다 내 삶의 반경이, 동선이 짧다는 걸 알게 됐다. 동선이 충분히 짧아도 작은 공간에서조차 난 모든 걸 부족하지 않게 뚝딱뚝딱 해내고 있으니, 내겐 큰 집은 필요치 않다. 나 혼자 살기엔 충분하다는 생각이며 나라는 사람은 내 취향의 물건들로만 배치해도 얼마든지 코지하게, 편안하게, 나다운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을 부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판단도 있다.


살아보니, 집.이 내 정신건강에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는 것. 공간에 대한 의미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기 시작한 후부터는 내 집은 그 자체만으로 날 포근하게 만드는, 내 정신을 포근히 감싸주는 영역으로까지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공간. 내 집.이 내겐 이토록 남다를 수밖에.


내가 사는 집 역시 나다워야 한다는 생각인데, 가령 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은 1명인데, 나보다 집이 확연하게 커버리면 그 집은 내집이 아니라 공간이 날 소유한다는 생각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이번에 선택한 이 집은 철저히 나스럽고 날 꼭 닮았다.


요즘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나는 곧잘 이렇게 대답하곤 하는데, "난 아직까지는 자유롭게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살아보고 싶어. 내가 살아보고 싶었던 동네에 살아보는 것, 전혀 다른 공간에 돌아가며 살아보는 것. 이 얼마나 낭만적이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집.에 대한 정의는 외국의 것과는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여전히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개의치 않고 나다운 영역인 집.이라는 공간을 기어코 찾아내, 즐겁고 또 즐겁고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여전히 크다.


내 삶의 가치관과 철학과 태도가 뚜렷해지면 뚜렷해질수록 깊어지면 깊어질 수록, 명료해지면 명료해질 수록 집이라든지, 소유라든지, 여러가지 면에서 나는 생각보다 아주 많이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다.


집이란, 내 관리의 영역 속에 있을 정도의 크기면 충분하다는 생각이고 나에게 있어 내 집이란, 몇 제곱미터의 객관화된 수치 혹은 평수가 아니라 내 마음의 크기다. 그러므로 내가 사는 집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은 물론 충분히 만족스런 즐거움과 낭만이 가득한 집.이라 할 수 있다.


내 스스로의 판단과 취향에 의해 선택한 집이라야, 그래야지만이 더 잘 살아진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도 전혀 심심하지 않는 즐거운 나의 집. 굳이 밖에 나가지 않아도 나는 나.라는 우주 안에서 내 집.이라는 우주 안에서 충분히 유영하고 완전하게 자유롭고 혼자서도 잘 놀 줄 아는 사람이 됐다.


오늘 어쩐 일에서인지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켜자마자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문장이 번뜩였고 나는 어김없이 내 의식의 흐름대로 늘 그렇듯 자연스레 무심하게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하고야 말았다. 그러고 보니 글쓰기 역시 내겐 필연적이랄까. 이토록 무심하게 글 한 편을 써내려가는 것 역시 꼭 나답다는 생각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앞으로도 이런 방식으로 내 일상을 내 삶을 지켜 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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