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하지 않기

by miu

토요일은 내게 무장해제의 날이다. 핸드폰 비행기 모드같달까. 그 어느날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기. 가만히 있기가 완전하게 완벽하게 곧잘 되는 날이다. 세시간 간격으로 두 끼를 뚝딱해먹고는 소파에 다리를 쭉 뻗어 누워있다. 노트북의 무게감이 내 배를 짓누른다.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에 유기농.이라는 말에 이끌려 들어간 곳에서 샌드위치.하나를 사서 들어왔다. 닭고기나 포크, 튜나라도 들어있는 게 없나 찾아봤지만 야채 가득한 샌드위치들 뿐이었다. 오이, 사과, 토마토, 햄, 치즈, 소스, 양상추, 자색 양배추가 전부였지만 나름 건강한 맛.에 먹을만 했다. 내겐 간식정도의 양이 되겠다. 샌드위치를 먹고선 통밀 쿠키1개와 바나나1개도 먹었건만, 3시간 만에 울린 뱃속 알람소리에 기꺼이 한끼를 더 차렸다.


먹는 것, 하는 것, 그 모든 것에서 무장해제 되는 날 맞다. 어제 늦은 밤 새로 구워 놓은 호밀빵 슬라이스2조각위에 토마토 아라비아따 소스, 오이 슬라이스, 토마토 슬라이스를 올린 후 페코리노 치즈를 그레이터로 솔솔 뿌려줬다. 오븐에 살짝 구워냈다.


다음주엔 사워도워를 직접 만들어볼까 싶어 르방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발효되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하루 건너 하루 건너 효모들에 밥주는 일.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냄새를 맡아보니 누룩 냄새가 풍긴다. 막걸리도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건가. 무튼 그들에게 밥주는 일은 진행중이다.


끼니를 두둑히 챙겨 먹은 후 내 기분은,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아. 가만히 있기."였다. 그러곤 아무 것도 완전하게 하지 않은 상태로 몇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고요함과 평화로움이 날 행복하게 한다. 아무 것도 하기 싫을 땐 나는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보면 내 호흡이, 내 숨이 날 알아차림으로 이끈다. 그저 의식하지 않는 자연스런 호흡으로 내 몸의 감각을 느껴본다.


음악도 껐고 내 공간에 우두커니 덩그라니 홀로 있는 나는, 그 자체만으로 자유를 느낀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지만, 가만히 있는 상태지만 실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그 존재 자체로 살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달까. 난 호흡하고 있다.는 것과 내 들숨과 날숨이 교차로 호흡하며 날 살아있게 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더 차분해지고 더 평온해지고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내 안의 모든 교감신경들이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몇 시간만의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이 그저 가만히 있기.가 내겐 또 다른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불안하기는 커녕 외려 자유로움을 느낀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토요일 늦은 오후 내게 주는 소소한 선물이라는 생각이다.


기분이 맑아졌다. 몰입하고 싶을 때, 글쓰고 싶을 때 글을 쓰는 나는, 완전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시간을 갖은 후 에너지가 차올랐는지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맑아진 기분으로, 말똥말똥한 정신상태로 글 한 편을 쓰는 일 역시 날 행복하게 하는 일임에 틀림없다.


글에도 정해진 형식이 어디 있을까. 내 생각과 사유와 감정과 태도와 가치관..등을 하나의 문장으로, 한 편의 글로 표현한다는 것. 말이 아닌 글로 표현한다는 건, 생각보다 고도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을 통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나.라는 사람을 발견한다. 때로는 날 위로하고 날 다독이고 내 생각을 더욱 명료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 글이 누군가에게 공감이 되고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큰 기쁨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 마음.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내게 의미 있는 행위.다.


오늘 늦은 오후. 완전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더니, 자유로움을 느꼈다. 내 마음이 만족하면, 내 마음이 여유로우면, 내 마음이 감사한 마음으로 가득하면 하루에도 아주 여러 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행복이란 거. 이미 내 안에 있다. 그 존재와 가치를 끄집어 내는 일, 발견하는 일. 오직 내게 달려 있다는 것도. 오늘도 난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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