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점점 들어가서 그런 건지. 20대 초반, 에너지 넘치던, 열정 넘치던 꿈 많던 소녀, 그 시절 나에 대한 그리움이 거센 폭풍우처럼 확 몰아칠 때가 가끔씩 있다. 오늘 이렇게 갑자기 그 시절의 나를 소환했고 왠지 모를 벅참과 새로운 다짐으로 내 정신과 온몸이 사르르 반응했다.
20대 초반 방송기자, 신문기자 가릴 것 없이 앵커를 꿈꾸던 나였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치열하게 공부하기도 각기 다른 학교의 언니 오빠들과 스터디를 하며 꿈을 향해 나아갔던 시절이 있었다. 매일 아침 신문을 정독하는 일, 사고하는 일, 책을 읽는 일, 상식책을 펴던 일, 글을 쓰는 일, 이 모두가 나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라고는 일도 없었으며 그저 기대와 희망만 가득했던 가장 순진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지원하는 곳마다 필기 합격을 모두 통과하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든 생각은 무언가에 집중하고 묵묵하게 꾸준하게 무던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리가 트인다는 거였다. 서류합격을 거쳐 많게는 몇 천명의 지원자들 중 필기에 합격했다는 것만으로 그 당시엔 기뻐할 만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시절이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데, 오늘 이렇게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났다는 건 그 시절의 열정이 너무도 그립다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그 시절의 꿈 많던 소녀처럼 내 삶 자체에 대한 개편 혹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참 신기한 건 그 당시 시험 합격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상식책에서 보았던 미래의 트렌드와 용어들이 고스란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건데, 미래는 어쩌면 예측 가능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그래서 더욱이 미래에 대한 준비가 중요하다는 생각까지로 이어졌다. 생각의 무작위가 이렇게 또 시작된다.
언론사마다 다르긴 했지만 모 언론사는 필기합격자 수험번호를 신문 1면에 공고했는데 지원을 가장 먼저 했는지 수험번호가 1번이었고 신문지면에 내 수험번호가 첫 번째로 적혀있는 걸 확인하고선 방방 뛰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시감에 설렌다.
언론사 필기에 합격하기 위한 나의 전략은 서두를 맛깔나게 쓸 것.이었는데 진심으로 효과가 있었다. 기억에 남는 합격 글 중의 서두는 "Awakened Dragon", 잠에서 깨어나는 용.이었다. 내 생각과 근거가 명확하다면 어떤 주제라도 소재라도 어디에라도 갖다 대어도 기가 막히게 떨어지는 쾌감을 느끼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곤 했다.
그 시절엔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독특한 시선, 혹은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비범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크고 작은 세상의 이슈에 관심을 갖는 일,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십여 년 전에 끊임없이 토론하고 글로 썼던 주제나 소재나 이슈들이 지금까지와 거의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사회 양극화, 경제문제, 정치문제, 국제문제 그 모든 이슈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라는 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약하게나마 도약은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간다는 것, 작금의 시대, 더욱이 팬데믹 상황 속 우리의 운명, 이러한 것들이 큰 화두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당연이란 건 없지만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적어도 우리 개개인은 상식과 비상식을 구분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려면 우리 개개인이 깨어있어야 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하는데 현재 우리 대한민국엔 이러한 것들의 부재가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 국민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당연한 것과 당연하지 않음의 구분, 상식적인 것과 비상식적인 것의 구분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다. 현재에 머무를 수 없다. 이 모든 것은 한 개인의 삶으로부터도 나아가서 한 국가의 미래와 운명과도 직결된다.
요즘 최대한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려다 보니 그 시절 비판적 사고로 때로는 냉철하게 글을 써 내려갔던 내가 떠올랐고 앞으로 우리의 운명과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선택을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 과연 나의 선택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 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 나의 대답은 심플하고 명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