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메시지가 왔다. 파리에 사는 친구가 최근 새로 이사한 집 사진을 보내왔다. 내가 요긴히 쓰다 남기고 온 1인용 엔틱 소파까지 가지고 왔다며 말이다. 무엇보다 확 트인 창문과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뷰, 무엇을 갖다 놓아도 훌륭한 인테리어가 완성되는 공간, 오스만식 아파트멍이라 역시 느낌 있었다.
일전에 집에 대한 얘기를 나눴을 때 그녀는, 본인은 앞으로도 집을 살 생각이 없고 9살 난 딸 호만에게도 자신의 집을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단호히 말했었다. 이번에도 월세라며 hahaha하며 이모티콘을 보내왔다.(그녀는 꽤 안정된 직장에 카리브해로 바캉스를 떠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파리지엔느다)
집의 크기나 구조는 이전 집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집의 위치가 요즘 파리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렇게 핫한 11구라는 것.이 달라졌다. 노르망디 출신에 워낙 힙한 친구라 집 인테리어 역시 그녀만의 향기가 물씬 났고 나 또한 곧 이사를 앞두고 있다고 소식을 전했다.
몇 년 사이 이리도 집값이 오를 수 있을까.싶었다. 작년에 만났던 내 주변 사람들은 말 그대로 영혼까지 끌어모아, 은행 대출을 받아 서울에 집을 다들 장만했다고 했다. 이유는 이때가 아니면 집을 못 살 거 같아서, 남들이 지금 다 사기 때문에 거기에 편승하지 않으면 지금 혹은 나중에 크게 손해를 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 때문이라고들 했다. 그러지 않은 나는, 뭐지. 내가 지금 잘 못 살고 있는 건가... 내가 생각하는 집과 우리나라의 그 집. 값은 갭이 너무 컸다. 집은 공간으로서 그 본래의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우리는 그 안의 내용이 아니라 외형의 값을 너무 많이 쳐주는 듯하다.
외국에서 살아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집.과 우리나라에서 생각하는 집.의 개념은 확실히 달랐다. 물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상 그 차이는 확실하다.
몽마르뜨에 사는 내 친구 파비앙은 파리, 뉴욕, 런던 등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유명한 아티스트다. 친구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 그날은 친구 집을 처음 가보는 자리였다. 몽마르뜨는 파리 예술가들의 거주지로 유명하지만 꽤 위험한 지역도 곳곳에 있어서 치안이 그리 안전하지 못하다. 친구는 집 앞으로 마중을 나왔는데 성 문같이 생긴 검은색 철제로 된 큰 문과 함께 날 맞이했다. 그 옆에는 파리 역사가 숨 쉬는 건물이나 장소임을 나타내는 공인 시그널이 세워져 있었다.
친구가 말하길 이곳은 프랑스 정부와 파리시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하는 집이자 아틀리에라고 했다. 파비앙 말고도 여러 명의 유명 예술가들이 거주지 겸 아틀리에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각각의 큰 집들로 나뉘어 있어 너무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월 10만 원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고 했다. 파비앙은 이 공간이 너무 만족스럽다고 했고 그의 유려한 작품들이 모두 이곳에서 탄생된다. 앞마당엔 토마토도 키우는데 식사 전 가볍게 맥주와 마당에서 갓 따온 생토마토와 소시쏭과 바게트를 곁들였다. 파란 하늘 위를 바라보니 이런 낭만이 없었다.
내가 당시 이사 갈 집을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있던 터라 파비앙과 집.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집 얘기를 하다 공감하며 손뼉을 쳤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얼마든지 파리 부촌이라 불리는 7구나 16구 등 파리 시내 어디든 집을 살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는 한 달 10만 원의 렌트비를 내는 몽마르뜨 언덕 위 아틀리에에 산다. 파리 시내 어디에서, 월 10만 원에 이만한 집에서 살 수 있겠냐며 굳이 따로 집을 사거나 구해 살 필요가 없다는 게 그의 요지였다. 본인이 만족하면 됐고 예술가인 그에게 공간은 사적 영역으로서의 공간보다도 자유로움을 넘어선 그 무언가임이 분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에선 특히 파리에선 절대 부를 드러내서도 과시해서도 안된다고 귀띔해줬다.
친구들로부터 든 생각은 집.이란, 머무는 공간.이라는 건데 외국 친구들은 하나같이 집을 place라고 표현한다. my place, 즉 내 공간인 것이다. 그 쓰임과 효용에 무게를 둔다. 외국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가는 일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군가에게 집을 보여준다. 혹은 공개한다.는 의미는 굉장히 사적인 게 돼버려서 자주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는 아직까지도 많이 드물다. 집에 대한 개념과 이를 소유하는 것의 개념과 철학 역시 다 다르겠지만 나만 본다면 난, 파리 친구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나만의 공간을 가져야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격하게 공감했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집, 공간에 대한 생각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집.은 내 삶이다. 고백하건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많은 경험이 날 알게 해줬다. 서울살이 시절,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게 조금만 더 집에 투자하고 가꾸고 할 걸. 지나고 나서 후회 참 많이 했다. 바쁜 회사생활에 치여 내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난 집을 너무 홀대했던 건 아닌지. 몸과 마음이 지칠 때마다 외부적인 요소에 집중하거나 치장을 하는 것이 아닌, 그때. 내 집, 내 방을 들여다보았더라면 많은 것이 해결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때 만약 내가 조금만 더 집에 신경을 썼더라면 지금 나는, 내 삶은 달라졌을까.싶을 정도로 요즘 집이 내게 주는 의미가 크다.
나는 집의 크기가 작든 크든, 좋은 동네이든 아니든, 대도시든 아니든, 그 공간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와 위로와 안락함을 주는지.에 가치를 둔다. 겉은 허름해도 속이 알찬, 예쁜 공간이라면 이 또한 좋은 집 아닌가. 내가 그 공간을 비싸게 향유하고 그렇게 만들면 된다. 겉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안이 중요하다. 그 안을 오롯이 나만의 향기로 가득 채우면 될 일이다. 평생 살 수 있는 내 집이 떡하니 있으면 심적으로는 여유로울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없어도 그렇게 불안하지도 않으며 아직까지는 이런 집도 저런 집도 살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새로운 공간을 색다르게 꾸며볼 수 있는 요런 감성이 내겐 훨씬 의미가 있다.
집값은 내게 있어 수치화된 가격이 아니다. 그 공간이 내게 주는 의미와 가치다. 집값 역시 그 공간에 살고 있는 내가 매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이번엔 완전 나다운 집을 선택해 나답게 꾸며볼 참이다. 집.은 나를 성장시키고 나를 좀 더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자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공간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큼은 내가 사는 집은 웬만한 서울 집 값 못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로 초라하지도 새드하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