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느로서의 내 삶은 만만치 않았다. 내가 파리와 마주한 것은 8월 초 한여름, 파리를 비롯한 유럽의 도시들의 한낮 기온이 40도를 육박할 때. 딱 그 무렵이었다. 처음엔 후회했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기대했던 파리는 그 파리가 아니었다. 콧대 높은 사람들, 설명할 수 없는 냉랭함과 도도함 차가웠고 이 사람들과 도저히 친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한 번은 메트로를 환승하려고 걸어가던 중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오고 가고 있었고 나도 내 갈길을 가고 있었을 뿐이다. 갑자기 중년의 여성이 내 얼굴 정면으로 서더니 나를 보고 큰소리로 소리치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불어를 당연히 못 알아들었던 나는 분명 내게 욕을 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물론 날 매우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고 갔기 때문이다.
행색은 아주 멀끔했으며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던 그 여성은 반대방향으로 오던 내가 자기 가는 길을 방해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로서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순간 너무 겁이 났고 숙소로 돌아오는 내내 기운이 빠져 내 어깨는 축 늘어져있었다. 파리의 첫인상. 심술궂고 사나웠던 그 중년 아줌마와 꼭 닮았었다. 그러면서 내 머릿속엔, "나 잘 온 거 맞는 걸까."
집을 구하는 일. 최우선 일이었다. 한국 유학생들의 집 구하기 사이트를 뒤져보기도 하고 현지 부동산에 직접 메시지를 남기고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에겐 파리에선 괜찮은 집이란 없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700-800유로는 그냥 넘었으니. 말 다했다. 악명 높은 파리의 집세. 여실히 실감하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는 나인데, 파리에서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다른 건 필요 없어 보였다. 운발이 기가 막히게 좋아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아주 더 많은 각오를 하고 왔었어야 했다.
15구에서 한 달. 15구 참 살기 좋은 동네였다. 파리스러웠으며 점잖고 멋진 이웃들이 많았다. 결국 내가 한국을 떠나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3구. 파리 사는 동안 곳곳을 걸어 다니자 마음먹었던 터라. 어찌어찌하다 보니 교통의 요지로는 손색없는 3구로 이사 가게 되었다. 집에서 센강, 생마흐탱 운하는 걸어서 15분 거리. 루브르 박물관은 20분, 오뗄 드 빌, 베아슈베도 걸어서 15분이면 닿았다. 퐁피두는 10분도 채 안 걸린 곳에 살게 됐다. 3구는 확실히 시끄럽고 붐볐다.
여행자와는 분명 다른, 현지인의 삶은 어느 곳이든 그렇듯 건조하기도 그리 낭만적이지도 않은 달콤 쌉싸름한 녹차라떼를 들이키는 그런 맛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상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할 시럽 방울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
프랑스 문화부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 덕분에 2년 동안 프랑스에 있는 웬만한 박물관과 미술관은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카드를 발급받게 됐는데 친구 덕을 톡톡히 보았다. 프랑스어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파리 시내에 있는 박물관, 미술관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 카드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됐었고 나로서는 마법의 카드로 칭할만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 속으로 들어간 기분, 책에서만 보던 예술가들과 직접 대화하는 기분,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오묘한 감정들을 파리에 살면서 경험할 수 있었다. 여행자인 듯 아닌 듯. 그러면서도 확연히 여행자는 아니었던 내 일상은 그렇게 점점 파리 센강의 잔잔한 물결처럼 아주 조금씩 그들의 삶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파리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와 버터를 아주 싼 값으로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사실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봉막쉐 식품관을 제 집 드나들 듯했는데 요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낯선 식재료들을 구경하러 가는 일이 파리 삶의 또 다른 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머니 사정이 얇은 유학생 신분의 나는, 모노프리의 1유로짜리 모짜렐라 치즈를 가장 애정 했다. 값싸고 질 좋은 치즈와 버터 종류가 워낙 많아 고르기가 고민스러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파리 사람들이 부러운 이유. 내겐 이것도 포함이다.
날카로웠던 파리의 첫인상이 날이 갈수록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파리에 사는 동안 좋은 친구들도 만나게 되면서 파리를 오롯이 있는 그대로 느끼자. 경험하자.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다. 참 미워할 수 없는 파리. 그 오묘한 매력 샘이 날 정도다. 잡힐 듯 안 집혔던 그곳. 도시와 밀당을 한 건 파리가 처음이다.
거리의 불빛 아래 센강을 거닐거나 퐁데자흐 다리 위 버스킹 기타 연주와 노래를 듣자 하면, 생마르탱 운하가 보이는 야외 테라스에서 와인 한 잔을 마시고 앉아 있노라면 파리. 이렇게 낭만적일 수 없다며. 인생은 아름답다.며 그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날은 파리. 온 걸 후회한다.며 이제 다시는 파리에 살지 않을거야.라며 지금 당장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며, 파리와 이별을 선언하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파리에 살면, 변덕쟁이가 될 수밖에 없다.
파리에 살아보는 것. 언젠가 꼭 한 번 살아봐야지.했던 그 도시에서의 삶은 기가 막힌 것이었고 파리지엔느의 삶은 더더욱 흥미로운 일이었었음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젠 그곳을 다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곳.에서의 삶은 추억의 에너지로 진하게 농축되어 내게 또 다른 꿈을 꾸게 하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