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과 비교하면 내 모습, 참 많이도 변했다. 가끔 속된 말로 어쩔 땐 진짜 가관이지 싶다. 메이크업을 도통하지 않은 지는 1년이 넘었고 안 입는 옷도 모두 정리하거나 버렸으며 올여름에 입을 티셔츠 3장을 샀던 것을 제외하곤 옷을 사지 않았다. 큰 변화였다. 광화문 커리어 우먼 시절, 직장생활을 했던 시절엔, 어떻게 하면 내 매력을 더 살릴 수 있을까.에서부터 시작해 이 옷을 입으면 예뻐 보이겠지?등등 시선이 온통 내.가 아닌 '타인'이었다.
그땐 또 그런 즐거움이 있었고 나만 유별난 것도 아니었기에 또 그것이 날 전혀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에 내 삶이자 일상이었다. 소비와 외모, 몸매, 매력, 남부럽지 않은 직장 등등. 사회적, 외부적 요소들이 온통 나를 둘러쌌다. 그랬던 내가, 무엇이 날 변화하게 만들었을까.
생각이 변하자 곧바로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나타났다. 과거처럼 직업이 화려해지지도 또 일의 특성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개인적으론 이에 따라 달라진 내 소비패턴과 삶의 방식이 만족스럽다. 가끔 길을 지나다가 건물 창에 비치는 내 실루엣과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다 흠칫 놀라긴 하지만, 뜨헉, 나 왜 이리 촌스러워 보이지. 진짜 너무 외모에 신경을 안 쓰는 건가. 조금 초라한데. 정도로 혼자 중얼거리며 길을 걷기도 하지만 이내 몇 미터 안 가서 뭐 어때. 괜찮아.라며 당당하게 걷는 나를 발견한다.
아주 많이 스스로의 모습이나 라이프스타일이 단순해지고 수수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한 원칙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수하되 소박할 수 있되, 초라해 보이지는 말자.이다.
확실한 건 소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이다.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너무 함부로 소비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짐정리하던 어느 날 문득 하게 되었고 과거 어릴 적부터 추억이 깃든 귀한 물건이나 옷들을 너무 함부로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반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거창한 신념이나 태도는 결코 아니며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방향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눈에 띄게 나타난 건 외모의 변화다. 태닝을 한 듯한 타고난 구릿빛 피부에 눈코입이 큰 화려한 이목구비 덕분에 늘 주위에서 들어왔던 말이 화려하다. 이국적이다.라는 말이었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 요즘은 참 많이 밋밋함을 유지 중이다. 오히려 화려하게 치장하고 꾸몄던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화려함에 화려함을 더해 과한 느낌이 있었던 반면, 요즘은 화려한 이미지에 수수함을 더하니 오히려 그 밸런스가 아주 잘 맞아 나름 괜찮은 상태가 된 듯 하다.
화장을 안 하고 옷에도 꾸밈을 더하지 않으니 오히려 진주 귀걸이와 얇은 진주 목걸이도 더 즐겨 차게 돼서 좋다. 화려해 보이지 않아서 즐겁다. 최근의 일이다. 과거 즐겨 찾던 외국 패스트패션 브랜드 사이트에 정말 오랜만에 들어가 보았는데 몇 가지 맘에 드는 아이템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다시 들어가 보니 사고 싶은 마음은 커녕 예쁘다. 딱 이 정도에 그쳤다. 아직까지는 있는 옷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잘 입어보자.싶다. 이제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는다. 호피무늬 옷을 워낙 좋아하는데 전체적인 밸런스가 수수해지다 보니 같은 호피무늬 옷도 전혀 과하지 않게 보이며 오히려 스타일리시하게 보인다. 밸런스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화려하지 않음의 즐거움은 날 더 건강하게 만들었다. 매일 집 앞 천변을 1시간 이상 걷고 있고 하루에 만 보 이상은 걸으려고 노력한다. 깨닫게 된 하나는 몸이 건강하고 탄탄하면 사실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고 예쁘다. 이런 몸에는 샤넬도 구찌도 베르사체도 고터의 만 원짜리 옷과 별 차이가 없다. 몸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라인도 잘 가꾸어지면 기존에 내 옷장 안에 있는 옷들이 하나같이 새로워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니 굳이 옷에 돈을 소비할 이유가 없으며 더 이상 짙은 화장도 예쁜 신상 옷들도 신발도 가방도 크게 필요가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가끔 옛 사진을 보거나 커리어우먼 시절일 때 매일 신던 구두를 볼 때면 그땐 그랬지.싶지만 이내 지금이 더 젊어진 기분이며 더 젊게 사는 기분이다. 운동화가 아니면 외출을 하지 않는 요즘의 내가.신기하다. 운동화로도 얼마든지 멋을 낼 수 있음을 알기에 이젠 내 몸이 편한 대로 다 들어주려고 한다.
내 생각이 달라졌고 내 삶의 방식이 변화됐고 몸이 건강해졌고 나.에 집중하게 됐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예뻐 보여야 하고 세련돼 보여야 하고 있어 보여야 하고 예뻐져야 하지?라는 간단한 물음에서 시작된 나의 질문과 답은, 나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그러한 것들이 내 인생을 크게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만한 것도 아니었으며 또 그것이 나.라는 사람의 내 전부는 더더욱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 결과이다. '
고로 난 수수하고 소박하되 결코 촌스럽지는 않으며 초라하지는 더더욱 않다. 내 안의 내가 그 밸런스를 기가 막히게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며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화려하지 않음의 즐거움은 결코 가볍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