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뉴스를 보고선 마음 한 켠이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아쉬움과 그리움이 밀려왔다. 기사를 본 날 동기와 전 동료였던 절친한 언니들에게서도 연락을 받았다. 내 인생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곳. 출구전략으로 단계적인 폐지가 시행될 거라는 소식에 회사를 떠난 지 꽤 되었음에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 전부터도 주변으로부터 종종 소식은 들었지만 확정이 됐다는 소식에 꽤나 마음이 그랬다.
내 20대 시절은, 그곳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엔 그곳은 온통 내 전부였다. 내게 꼬박꼬박 월급을 주었고 그렇게 그 돈으로 서울에서 생활을 꾸려나갔고 내 젊음과 함께 울고 웃었다. 결코 빠질 수 없는 내 인생 필름 파노라마의 한 부분인데 막상 그곳이 없어진다니 마치 금방이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한. 한 줌의 재가 되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추억과 기억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닐진대 눈에 보이는 실재.가 우선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영 섭섭하다.
대학시절 광화문 역을 지나가다 봤던 그 건물은 나의 로망이기도 했으며. 사원증 카드를 찍고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고자 했던 내 소망을 고맙게도 이뤄준 곳이기도 했다. 언론사가 아닌 대기업 첫 지원에서 첫 합격을 준 곳도 그곳이었다. 합격 전화 한 통에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뇌리에 스친다.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눈물이 찔끔 나려 하는지. 아쉬움과 고마움이 겹친다. 이렇게 또 난 상념에 푹 빠지고 말았다.
행복만 있었던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때로는 날 아주 많이 힘들게 하기도 했기에 애증의 관계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이렇게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걸 보니 내가 그곳을 아주 많이 사랑했나 보다. 첫정이 뭔지. 꼭 그런 느낌에 아련하기까지 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두근두근 회사로 출근한 첫날,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지점에서 만든 급여통장을 아직도 쓰고 있는데. 사실 주거래 계좌가 되지 않은지 오래되었으나. 없애고 싶지 않았다. 회사원 시절의 추억과 기억마저도 다 해지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접하다 내 생에 첫 발급한 내 명의의 신용카드가 떠올랐다.
클리어 카드. 그걸 발급받고선 덜덜했던 기억까지 소환됐다.(그때만 해도 신용카드가 무서웠다. 자칫 잘못하면 과소비 요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왔기에 괜스레 겁이 났었다. 순수했었다). 아직 모든 신규 발급이 중단되기 전이라 내친김에 그 카드가 못내 아쉬워 어제 모바일로 십여 년 전 처음 썼던 그 카드를 발급해놓았다.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까지 유용하게 써 볼 참이다.
핸드폰 속에 저장되어 있는 그 시절 사진들을 꺼내 보았다. 그러다 "씨티은행에 근무하는 동안 항상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로 근무하였음. 은행이라는 틀을 벗어나 보다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분야에서 활동해 볼 것을 권고한 적이 있음......"의 퇴사 후 받은 추천서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 시절 나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믿어주시고 지지해주셨던 멘토님들의 모습이 떠올라 감사함에 마음이 뭉클해졌다.
5년 동안 그곳은 내게 인생 훈련소와 같았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던, 이 세상 무서운 지 모르던, 희망만 가득 부풀어 있었던 내게 인생은 네가 생각하는 만큼 친절하지 않다고. 인생은 쉽지 않다고. 그러니까 강해져야 한다는 말들을 수없이 알려줬다. 정말 많이 울기도 우울해하기도 속상해하기도 서러워하기도 정말 많이 웃기도 행복해하기도 기쁘기도 했다. 덕분에 수족관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 밖으로 나올 땐, 조금은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신입행원이던 시절 엄마는 나의 첫 지점 발령지던 반포지점으로 우리 딸 첫 사회생활을 축하한다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파이팅! 메시지와 함께 떡과 떡케이크를 나도 모르게 주문해 보내셨다. 생일에도 직원들과 함께 나눠먹으라며 생일 케이크를 서프라이즈로 보내주시곤 하셨는데 내겐 늘 큰 힘이었고 감동이었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내 보물인데, 첫 출근 날 지점으로 내 이름이 한글 궁서체로 새겨져 있는 두툼한 피에르 가르뎅 볼펜을 선물로 보내셨다. 잉크가 다 마른 그 펜을 난 여전히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소위 나의 찐 팬분들이 꽤 있으셨는데, 칭찬엽서를 나 몰래 적어놓고 가신분들도. 해외여행을 다녀오신 후 현지산 주전부리를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텃밭에서 직접 상추를 뜯어오셨다며 신문지에 돌돌 말아 한뭉큼 가져다주시는 분들도. 케이크와 커피까지 살포시 전하고 가신 분들까지도. 셀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들이 생생하게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런 소소한 예쁨과 정을 받다 보면 어쩌면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 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그럴 때면 내 스스로가 매번 살아있음.의 환희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보면서 삶을 배웠고 때로는 배울 점이 정말 많은 멋진 어른들도 있었다.
지금까지도 절친하게 지내는 언니들과의 추억은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게 하는 마법인데, 광화문 맛집 감자탕집, 삼겹살 집, 카페, 허름한 맥줏집, 막걸리 전집 등... 곳곳이 사방이 모두 내겐 추억의 장소다. 마지막 출근 전 날 지점에서 마련해준 잊지 못할 눈물 나는 송별회며, 회사 앞 길거리 노점에서 야채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하던 일, 딸깍 거리는 미들 힐 뒷굽 소리와 함께 믹스 커피를 타서 회전이 되는 내 의자에 앉아 컴퓨터 로그인을 시작하는 나의 모습까지. 온전히 나만의 영역이던 내 책상 자리까지. 물건의 위치하며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이 난다.
내 20대 청춘과 젊음의 일기가 모두 그곳에 담겨 있는데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여전히 앞으로도 내 마음속에 살아서 그때의 경험과 감성으로 언제든 나를 다시 일으켜줄 것이라 믿는다. 고마웠고 또 고마웠으며 많이 그리울 거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