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by miu

"고등어 만원 어치만 주세요." 사람들로 북적북적대는 살아 숨쉬는 듯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재래시장을 난 참 좋아한다. 재래시장을 가는 날엔 생선가게에서 꼭 고등어를 사서 돌아왔는데, 원래부터 고기와 생선은 재래시장에 파는 것들 이래 야만 믿음이 갔다. 지금 사는 집 근처엔 재래시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어 아쉽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 엄마는 아침을 꼭 챙겨주셨는데, 자주 밥상에 올라왔던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고등어였다. 고등어와 삼치를 항상 같이 구워주셨는데 난 고등어의 푸르스름한 등에 감춰진 짙은 고동 빛깔의 등살과 바싹 구워진 등껍질을 유난히도 좋아했다.


고등어를 생선 중에 가장 좋아하다 보니,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요리의 재료도 고등어였다. 대학교 신입생 MT에 가서도 내가 선보였던 건, 고등어 무조림이었다. 고등어 무조림에 들어가는 무는 반드시 푹싹 익혀야 제 맛이라는 생각인데 간장과 고추장과 고춧가루의 나만의 황금비율로 고등어 무조림을 완성했고 당시 모두의 감탄사를 자아낼 만큼 기가 막힌 맛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요즘의 날씨에 따뜻한 고등어조림의 속살과, 푹 익힌 무, 자박자박한 국물과 흰쌀밥이 왜 이리도 생각이 나는지. 오늘 저녁밥에 무얼 먹을까 하다 문득 고등어조림이 떠올랐다. 내친김에 내일 남문 새벽시장에 다녀올 참이다.


파리 살 땐 한국에서 먹던 고등어는 찾아볼 수도 없고 생선이나 해산물 가격이 내겐 터무니없이 비싸게 느껴져서 자주 먹지 못했는데 그래서 그때 고등어가 그리워 자주 먹던 건 한인마트에서 산 꽁치통조림으로 만든 꽁치조림이었다. 그렇게 고등어에 대한 그리움을 꽁치로 대신해 달랬다. 아무렴 꽁치라도 고등어 본연의 그 맛과 살을 대신할 순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온 직후엔 이제는 그만하면 되었다.싶을 때까지 고등어구이를 자주 해 먹었다.


고등어 하면 간고등어인데,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는 내게 엄마는 자주 아이스박스 아니면 큰 박스채로 김치며 과일이며 밑반찬이며 먹을 것을 택배를 보내주셨는데, 그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던 것이 바로 간고등어였다. 딸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이 고등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계셨던 엄마는 손수 간고등어를 하나하나 한 마리씩, 한 끼로, 냉동실에서 그때그때 꺼내 구워 먹을 수 있게 크린랩에 싸서 보내셨다. 간고등어는 그야말로 엄마의 정성이었고 사랑이었다. 그래서 쉬는 주말 아침 냉동실을 열었을 때 간고등어가 가득 쌓여 있는 걸 보고 있으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외로움을 잠식해버리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 켭켭이 쌓인 세월 속에서 난, 가끔 이렇게 아니 자주 맛과 향을 떠올리게 됐다. 미각, 후각, 청각, 시각, 촉각 이 모두가 생생하게 기억되고 그리운 건 왜일까. 나이가 들면 오감이 무뎌진다는 데 오히려 되살아나는 기분이다. 유독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오만가지 감각에 예민한 듯하다. 아마도 내 일상 아주 사소한 것들에 대한 연민 혹은 애틋한 사랑이 아닐까.


얼마 전 문득 이런 생각도 했다. 지금껏 내가 먹고 자라온 음식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느 것 하나 아무것도 아닌 것은 없었으며 아주 사소한 보잘것없는 음식까지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 내 이야기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아주 잠시 지나온 나의 음식들을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늦은 밤 집으로 가는 퇴근길에 찬 공기를 맞고 걷다 보면 겨울이 성큼 다가오고 있구나. 따뜻한 국물이 생각 나는 걸. 그러면서 딱 이맘때 먹던 음식들 생각에 향수에 젖기도, 또 일주일 저녁 메뉴를 그것들로 심사숙고해서 꽉꽉 채워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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