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있어야 된다는 말

by miu

"사람은 시련이 있어야 돼... 시련도 겪어봐야..." 어제 이 말을 수화기 너머로 듣고선 음. 글쎄. 난 잠시 말을 멈췄다. 아직은 한창인 나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서른 중반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 지난 내 삶을 관조하게 될 수밖에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평소 같았음 무심코 넘겼을 이 말이 이제는 전혀 대수롭지 않게 들리지 않는 건 무얼까. 여하튼 수화기 너머 이 말이 불편했다기보다 그렇지 만도 않다.는 내 생각에 그냥 몇 초 동안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은 것뿐이다.


대학생이던 시절,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히트였는데, 그 책을 읽고 난 후 내게 든 생각은, 아니? 꼭 아프지 않아도 돼.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게 더 나은 게 아닌가.였다. 20-30대 청춘 모두가 아프지 않을 수 있다면 아프지 않은 방향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사회 혹은 살맛 나는 세상이 아닐까. 아프지 않아도, 굳이 애써 넘어지지 않아도 세상을 배울 수 있고 경험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삶의 지혜와 통찰까지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아픈 게 당연하다는 그 어떤 당연함 혹은 당위성보다 아파도 돼. 괜찮아.라는 위로가 돼야 하지 않을까.생각했던 그 시절 호기롭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던 이유다.


인생이란 이런 것.이라며 아주 티끌만큼 인생과 나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이 시점에 20대 젊은 청춘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 나의 모습과 오버랩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류시화 시인의 잠언집 제목처럼, 그들이 나보다는 더 나아서 빨리 혹은 이미 알고 있기를 바라기도. 인생의 시행착오들을 아예 겪지 않을 순 없어도 그 횟수라도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살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까지도 갖곤 한다.


지금껏 살아보니 시련은 분명 날 성장시켰다. 시련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삶을 배웠고 느꼈고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잔잔한 파도처럼 고요해진 마음과 함께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길을 걷다가도 문득. 시련이란거 그게 굳이 없었어도, 겪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면 그편이 나았을텐데.라고 생각하곤 한다. 아프지 않으면 좋으련만, 시련을 갖지 않으면 좋으련만, 그치만 내 인생은 시련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대신 시련을 마주하고 부딪혀보고 극복해보니 결국엔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많았다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는 깡과 굳은 심지를 얻었다.


늦은 밤, 수화기 너머 날 위로하는 듯한 그 말이 깊게 와닿지 않았던 이유도. 사람은 생각보다 나.말고는 남의 인생에 큰 관심이 없다는 확고한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무심한 듯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닐까.라는 무덤덤함 그리고 난 이미 그 시련과 맞짱 떠 이겼다는 자신감과 내 안의 단단함이 있었기에 동요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난, 씁쓸하지도 그렇다고 반갑지도 않던 그 말에 아무 말 없던 몇 초 새 마음속으로, 글쎄 난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라고 외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굳이 아프지 않아도 괜찮아. 그럴 수만 있다면 시련 따위 굳이 겪지 않아도 돼.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삶을 배울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반드시. 꼭. 아파야만 시련을 겪어야만 내가 인생을 배울 수 있는 거라면, 사절하고 싶을 만큼. 이미 우리 모두는 각자의 치열한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슈퍼 히어로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너희들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고 그만하면 되었다고,

나는 오늘도 이렇게 시련을 살살 달래 가며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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