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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앤라라 Dec 18. 2021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지난 사랑과의 재회를 꿈꾸는 당신에게

가끔 지난 사랑이 잘 지내는지 궁금해지는 건 미련이 남아서는 아니다. 그냥 함께 갔던 장소나 함께 듣던 노래, 함께 봤던 영화를 우연히 마주했을 때 내가 잘 지내듯 너도 잘 지내는지 궁금해지는 거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에 젖는다. 그때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어떤 이별은 그 끝으로 가는 시간이 짧아서 조금 덜 힘들기도 하고, 어떤 이별은 끝도 없이 이어져서 오랫동안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H와의 연애는 길었던 연애기간만큼 이별까지 가는 길도 쉽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전화를 한다거나 집 앞에서 무작정 기다리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20대에 시작한 연애가 30대로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성숙했고, 무모한 행동으로 서로를 붙잡는 게 오히려 서로를 멀어지게 만들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분명 헤어졌는데, 마음으로 끝을 내지 못했다. 머리로는 끝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헛된 희망을 품었다. 그가 변하면, 또 내가 변하면 서로 사랑했던 기억으로 다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별을 고하고 6개월쯤 지난 어느 날,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그때 그 메시지에 보고싶다는 말을 했던가, 아니면 잘 지내냐는 덤덤한 물음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우리는 재회했다. 


살이 너무 많이 빠져 있어서 조금 놀랐고, 낯선 옷차림을 보며 우리가 진짜 헤어졌구나 실감했다. 내가 없는 빈 자리를 너도 착실히 채워가며 살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갑자기 이별을 온 마음으로 인정하게 됐다.  그때 나는 핼쑥해진 그를 보며 너도 나만큼 힘들었구나 안도했던 것 같다. 너무 잘 지내지 않아서, 나 혼자만 힘들었던 건 아니라서 위로가 됐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쁜 걸까. 그런데 사실은 그랬다. 


네가 나를 너무 쉽게 잊으면 그게 배신처럼 느껴질 것 같다고 말하니, 잊은 채 살 수는 없을 거라고 네가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지금도 조금의 위안이 된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 나한테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너의 기억 속에서도 한때의 기억으로 존재한다는 게 살면서 내내 위안이 될 것 같다. 한 시절 한 때, 젊은 날의 기억을 우리가 함께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들으면서 그런 재회를 꿈꿨던 적이 있다. 나를 잊지 못하는 그와 그를 잊지 못하는 내가 운명처럼 다시 만나서 사랑하는 이야기. 


그런데 막상 마주한 재회의 시간은 생각만큼 로맨틱하지 않았다. 감정보다 우리에게 직면한 현실의 무게가 컸고, 여전히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처럼 되돌리기에는 멀리 왔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헤어짐에는 헤어짐의 이유가 확실해서 재회가 꿈같지는 않았다. 때때로 과거에 얽매여 자신의 시간을 쏟고 있는 누군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데, 그건 나도 그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 시절의 그때처럼 우리가 다시 사랑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은 그와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모르는 시간동안 벌어진 틈새를 메우는 건 실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 때 의미가 있다. 문득 꺼내 볼 수 있는 예쁜 시절의 추억담 하나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게 인생에서 얼마나 값진 일인지 이제는 안다. 그 시절 그때의 우리를 서로 기억하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지난 사랑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지는 말자.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내가 아니듯, 지금의 그가 그때의 그는 아니니까. 결국 내가 사랑한 그는 지금 없다. 재회한다고 해도 그때의 그가 아니라 지금의 그를 사랑해야 하는 거다. 추억 속의 그가 아니라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가는 그를.   


추억이란 늘 그럴듯한 포장지가 씌워져 덧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다시 만났을 때 후회할 확률이 높다고 말하나 보다. 지난 사랑은 추억 속에서 훨씬 더 아름답다. 그 시절 그때에 너를 만났던 것에 감사하며, 예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또 감사하며 그 시절의 우리를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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