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멀스멀 한국 입맛
우리 가족을 만나기 전 미스 알렌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삼성, 현대가 한국 제품이라는 것과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 있다는 정도 그게 다였다. 우간다에서도 한국인들을 본 적은 있지만 따로 대화를 나눠보거나 친분이 있는 한국인은 없었다.
한국에서 가까운 동남아 쪽으로만 여행을 가도 한국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한국사람을 잘 알지만, 더 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다 보면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 드라마나 케이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더더욱 그렇다.
미스 알렌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나도 역시 우간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니 서운 할 것은 없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두 나라의 사람이 만났으니 궁금한 것도 참 많았다.
가장 처음 가진 관심사는 음식이었다.
피자, 파스타, 쌀국수, 케밥, 샤슬릭 등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접해 본 적 있지만 우간다 음식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주식은 무엇인지 식재료는 어떤 것을 제공해야 하는지 궁금했고, 알렌도 역시 한식은 처음이라 신기해했다.
쌀
쌀이 주식인 한국, 매번 쌀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쌀 씻는 법과 밥 짓는 법을 첫 번째로 전수하게 되었는데 한국에서부터 공수해 온 전기압력 밥솥에 기능은 어찌나 많은지 어쩌다가 설정이 바뀌기라도 하면 바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알렌도 역시 쌀을 먹는다. 여기서는 주로 인도 쌀인 바스마티를 먹는데, 냄비로 지어도 된다고 했지만 따뜻하게 먹으라고 전기밥솥을 하나 사 줬다. 밥 지을 때 빼고는 전기 코드를 빼놓아서 어떻게 보관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바스마티 쌀은 길쭉길쭉하고 찰기가 별로 없어서 밥이 완성된 뒤에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실에 넣어놓고, 먹을 때마다 덜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다고 했다. 한 그릇에 먹는 밥의 양이 어마어마한데, 국그릇보다 더 큰 대접에 가득 쌓은 밥을 보니 처음에 내가 밥그릇이라고 알려준 그릇을 보고 3살 아이들 밥그릇 같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던 모습이 이해가 갔다.
한국 밥은 찰기가 있기 때문에 금방 배가 차기도 하고, 과거 우리 조상님들은 밥을 많이 먹었는데 한국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면서 정부에서 밥그릇 표준 규격을 줄여 점점 밥을 덜 먹게 되었다고 하니 매우 흥미로워했다.
알렌도 밥을 먹긴 하지만, 주식은 짜파티(밀가루 부침개랑 비슷한 요리), 포리지(죽)이라고 했다. 타피오카나 감자, 고구마도 많이 먹는 것 같다.
김치
처음 배추를 사 와서 겉절이를 담가 먹던 날, 알렌이 놀라 물었다.
"김치를 이걸로 만드는 거였어요?"
밥과 곁들여 먹기도 하고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당연하게 식사 때마다 김치를 챙기는데 그녀는 아마도 해산물이나 고기나 다른 재료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배추처럼 생겼으니 당연히 알겠지 생각했는데, 우간다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배추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이게 배추 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우간다에서도 배추가 재배되긴 함)
주로 배추김치를 많이 먹긴 하지만, 가끔 중국 무가 들어올 때나 한국 마트에 깻잎김치가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때마다 알렌에게 보여주고 다양한 김치가 있다고 알려준다.
처음에 김치를 먹어 봤을 때 알렌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최근에 겉절이를 맛보고는 뿅 반했다.
해산물
미스 알렌은 음식에 있어서는 도전에 굉장히 소극적인 편인데, 특히나 해산물에 약했다.
어릴 시절은 남해안, 크고 나서는 서해안 바닷가에서 자란 나는 음식 중에 해산물을 특히 좋아하는데 하루는 꽃게와 새우를 사 와서 손질을 맡겼다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우간다에는 바다가 없다고 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에서 자라온 나로서는 바다가 없는 나라를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그럼 생선도 먹어본 적 없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바다는 없어도 호수가 있다고 했다. 함께 지도를 찾아보니 우간다는 바다처럼 넓은 빅토리아 호수를 비롯한 여러 호수가 있었다. 물론 우간다에서도 해산물을 파는 곳이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신선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먹어본 적은 없다고 했다.
한국에도 민물생선 요리가 많이 있지만, 민물고기는 비리고 잘못 먹으면 기생충이 나올 수 있어서 조심스럽다는 나의 반응에, 미스 알렌은 바닷물고기가 본인에게 그렇게 느껴진다며 웃었다.
실제로 미스 알렌은 새우나 오징어를 먹어보는 것에 대해 가장 많이 주저하고 있고, 같이 외식을 하면 그녀를 위해 해산물이 들어가지 않은 요리를 주문한다.
내가 바닷물은 짠맛이 난다고 하자 미스 알렌은 "에히~"하면서 믿지 않았다. 내가 장난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처음으로 바다에 같이 놀러 가던 날 정말로 짠맛이 나는지 먹어보는 알렌을 보면서 우리 가족은 한바탕 배꼽을 잡았다.
소고기, 돼지고기
아랍 국가이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구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인데, 주로 소고기와 닭고기를 먹다가 돼지고기는 가끔 중국 마트에 갈 때 왕창 사 온다. 돼지고기를 사다 줄 때면 미스 알렌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한국에서는 돼지고기를 많이 먹지만 국산 소고기가 더 고급 음식이라고 하니 깜짝 놀란다. 우간다에서는 돼지고기가 더 비싸다고, 주로 선호하는 부위는 포크 립이라고 했다. 삼겹살과 목살을 사랑하는 나로서는 역시 이것도 나라마다 다르구나 생각되었다.
라면
그런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한국 음식은 라면이다.
처음 시작은 불닭볶음면이었다. 가끔 스트레스가 쌓일 때 먹곤 하는데, 처음 먹어보고는 이런 걸 왜 먹냐는 눈빛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도전은 결국 라면 마니아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라면이 왜 좋냐고 묻는 나에게, 쉽고 간편하고 맛있다고 대답하는 그녀다.
내가 한국 마트에 라면을 주문할 때면 돈을 낼 테니 자기 것도 함께 주문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는다.
미스 알렌과 대화하면서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은 지형이나 사계절이 음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구나 하는 점이다. 매 계절마다 제철 작물이 있고, 긴 겨울 동안 오래 두고 먹기 위해 발달한 저장음식들이 발달한 한국 음식과 날씨가 따뜻하고 비가 잘 와서 지천에 싱싱한 먹을거리가 많은 우간다의 음식은 확실히 차이가 있다.
한국 음식을 할 때 같은 재료로 차갑게 뜨겁게, 맵게 싱겁게 온갖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내거나 돼지고기와 함께 새우젓을 먹는 것처럼 식재료의 조화까지 생각하며 먹는 것을 보며 알렌은 한국인들은 참 생각을 많이 한다며 흥미로워했고, 해초를 말려 만든 김이나 도토리묵을 처음 보여주던 날 도대체 누가 이것을 만들 생각을 했냐고 감탄했다.
점점 한국 입맛이 되어가는 그녀
언젠가 우간다에 돌아가게 된다면 아마 혼자 김치를 담그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