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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03. 2020

#10 그녀의 한국 물건 사랑

Made in KOREA의 유혹

내 아들보다 한 살 많은 그녀의 딸은 철이 일찍 든 씩씩하고 대견한 아이다.

가끔 며칠 홀로 여행 가서 아이들 잠시만 못 봐도 처음엔 자유를 즐기지만 이내 집을 그리워하고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나는 오랜 시간 알렌과 떨어져 있는 그녀의 딸이 안쓰럽다.

아랍에미리트로 처음 해외 이사할 때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이, 과연 내가 한국에서 어떤 물건을 챙기고 현지에서 어떤 물건을 구매해야 하나 였던 것 같다.


당시 둘째는 기저귀를 차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기저귀도 챙기고 한국어 책도 여러 권 챙겼다. 그리고 여러 번의 이사를 하는 동안 열심히 따라다니던 가구들은 모두 지인에게 나눠주거나 버리고 왔다.


여러 날을 고민한 끝에 결론은 "그곳도 사람 사는 동네다."라는 점


그렇게 거의 아이들 책 이외에는 옮기는 물품 없이 맨 몸으로 부딪힌 이 곳에서도 몇 가지 물건은 꼭 한국 물건을 포기할 수 없는데, 미스 알렌과 함께 생활하면서 특별히 부탁하는 부분은 한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은 특히 소중하게 다뤄줄 것을 부탁했다.

최근에는 해상택배가 생겼지만, 이전에는 항공이나 우체국 EMS로만 받을 수 있어서 한번 보내면 킬로당 3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니 정말 꼭 필요한 물품만 받았는데, 화장품이나 속옷, 학용품, 수건, 식재료 혹은 이 나라에서는 비싸거나 구하기 어려운 물건들이기 때문이다.


우간다 음식을 만드는 특별한 조미료 이외에 소금이나 설탕 같은 기본 조미료는 서로 공유하고 있는데, 큰 맘먹고 산 비싼 한국 맛소금을 큰 수저로 여러 번 탈탈 털어 넣는 것을 보고 놀라 넘어갈 뻔 한 뒤로 알렌의 소금은 따로 마트에서 사다 주고 있다.


바닷물을 정수해서 사용하는 이곳 물 특성상 스텐 제품이 조금만 관리를 잘못해도 녹이 금방 슬어 남아나질 않는다. 그래서 여러 번 칼을 망가뜨린 후에 한국에서 들어오는 동생을 통해 세라믹 칼을 받았는데, 녹도 안 슬고 정말 좋지만 문제는 내구성이 약해 쉽게 망가진다는 것.

이미 미스 알렌의 손에서 칼 두 개가 망가진 이후 한국에서 다시 수리해 받은 귀한 세라믹 칼은 나만 쓰는 내 전용 칼이 되었다.


내가 하도 한국에서 직접 사 온 것들을 애지중지 하자 그녀가 한국 물건 좋은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버렸다.

처음엔 한국 물건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제는 내가 쓰는 물건 중에 좋아 보이는 것들은 한국에서 샀냐고 꼭 물어보곤 한다.


한 번씩 한국에서 손님이 오면 그 길에 한국 물건들을 20~30Kg씩 꽉꽉 채워 가지고 오는데, 그 길에 미스 알렌에게 줄 선물도 함께 챙기곤 한다.

한국에서 손님이 올 건데 혹시 갖고 싶은 물건 있냐고 물으니 어디서 들었는지 "달팽이 크림"을 받고 싶다고 해서 비싸지 않은 걸로 몇 개 사다 줬더니 너무 좋아하는 알렌이다.


특히 미스 알렌이 탐내 하는 물건 중에는 특히 아이들이 사용하는 물건이 많다.

뭉치지 않고 부드럽게 써지는 크레파스부터 색색깔의 색종이, 손에 묻어나지 않고 가벼운 점토, 더구나 아이들이 사용하는 물건에는 아이들의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성분으로 만들도록 법적으로 되어 있다고 하니

역시 "코레안!"이라며 엄지를 척 세운다.


큰 아이가 사용하는 가방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둘째 이모로부터 선물로 받은 빈폴 가방인데, 하루는 저 가방 한국 거냐고 물어오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딸에게 사다 주고 싶다고 혹시 부탁할 수 있냐고 했다.

가격을 말해주니 깜짝 놀라 마음을 접었다. (확실히 우리나라 책가방은 비싸긴 하다.)

순간 나는 궁금해졌다. 가방이 특별해 보였냐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아 보였냐고 물었더니 마감도 원단도 그리고 물병을 꽂는 전용 보냉 주머니까지 있는 점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브랜드 없이 잘 만든 저렴한 가방이라도 구해줄까 싶어서 얼마 정도 가격이면 좋을 것 같냐고 물으니 15000원이란다. 흠... 그 가격이면 구하기 쉽지 않겠다.


뭐든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어디에서나 같다. 그녀도 자라는 딸에게 경제적으로 더 풍족하게 지원해주기 위해서 높은 급여를 따라 외국에 나왔다.


내 아들보다 한 살 많은 그녀의 딸은 그런 그녀의 상황을 이해해주는 씩씩하고 대견한 아이다.

나는 가끔 며칠 홀로 여행 가서 아이들 잠시만 못 봐도 처음엔 자유를 즐기지만 이내 집을 그리워하고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데, 오랜 시간 알렌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그녀의 딸이 매우 안쓰럽다. 그래서 자꾸 뭔가를 더 해주고 싶어서 우리 아이들 물건 살 때 그녀의 딸도 함께 챙기기도 한다.


3월에 딸을 만나러 다녀오기 위해 비행기 티켓까지 예매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코로나로 인한 락다운으로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발이 묶여버렸다. 어서 상황이 좋아져서 그녀의 방에 잔뜩 쌓여가는 선물들을 한 아름 안고 가족들 품에서 편하게 쉬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모자에 아이들 이름을 새기면서, 미스 알렌 딸의 이름도 같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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