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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Aug 03. 2020

#11 큰 아이와의 갈등

아들은 처음이라

미스 알렌과 적응이 필요한 사람은 또 있었다. 바로 우리 집 두 아들들!

대부분 도우미를 고용하는 집은 어린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경우 오히려 아이들이 컸을 때 건강상의 이유로 도움이 필요하게 되었다.

미스 알렌이 처음 우리 집에 올 때 작은 아이는 6살 큰 아이는 9살이었는데 아이들이 이미 혼자서 일어나고 먹고 자고 양치도 하고 기본적인 생활은 혼자서 할 수 있는 나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미스 알렌의 손을 빌릴 일은 많지 않았다.

가끔 작은 아이 볼일 보고 난 뒤 뒤처리나 씻는 것을 도와주기도 하는데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첫째는 이미 부끄러움을 안 때라 미스 알렌 앞에서는 옷도 안 갈아입기 때문에 거의 큰 아이처럼 그렇게 지냈는데, 교류할 일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서로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 첫째와 둘째는 성격도 성향도 정말 많이 다르다.

첫째는 운동을 잘하고 수학을 좋아하는 천상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이고, 둘째는 언어와 음악에 밝고 관심이 많은 나긋나긋한 딸 같은 아들이다.


당연히 애교 많은 둘째는 상황 판단이 빨라 미스 알렌을 만난 첫날부터 그녀에게 엉겨 붙기 시작했고, 둘은 지금까지도 뗄 수 없는 절친이다. 그녀의 검은 피부를 만져보면서 피부빛이 아름답다고 말한 것을 시작으로 우간다 말을 배우기도 하고 우간다 노래를 부르기도 할 정도로 미스 알렌 껌딱지가 된 둘째와 달리 첫째는 우리 집에 온 새로운 사람과 기싸움을 시작했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듯 미스 알렌과 친해지고 싶지만 동생이 너무 빠르게 친해지니까 질투가 나기도 했던지 첫째의 관심 끌기는 주로 잘못된 방향으로 향했다.

특히 미스 알렌과의 공부 시간은 오래 집중하지 못하는 큰아이에게 갑자기 던져진 폭탄과도 같았다.

공부하자고 자리에 앉혀놓으면 불퉁거리는 표정을 짓거나 손장난을 하거나 책상에 엎드리거나 하는 등 매우 불손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에는 그녀가 두 손 두발 들고 나에게 못 가르치겠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하는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처음에 아이는 제가 왜 그러는지 그 이유도 몰랐다. 그냥 공부는 하고 싶은데 책상 앞에 앉으면 머리가 어지럽다면서 미스 알렌이 동생만 예뻐하고 꼭 자기한테만 뭐라고 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나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스 알렌은 학교에서 고학년 아이들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아이들 살살 달래가면서 하기보다는 좀 엄격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문제는 우리 첫째가 강하게 하면 더 강하게 대응하는 상남자 스타일이라는 점이다.

초반에 영어실력이 더 나은 둘째를 불러다가 형이 못 읽는 스펠링을 읽게 해서 자존심 강한 큰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낸 것도 한몫했다.

첫째는 글을 배울 시기에 한국과 아랍을 왔다 갔다 하면서 영어도, 한국어도 완벽하게 떼지 못했다. 특히 쓰고 읽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이 부분에 대한 것도 미스 알렌에게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구나


나는 칭찬 스티커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스 알렌이 느끼기에 그날의 수업태도나 생활태도가 좋으면 스티커를 줄 수 있다. 대신 큰 아이가 먼저 다 모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작전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고, 그녀의 칭찬 아래서 큰아이는 빠르게 안정되어갔다. 작은 아이는 형을 부러워하면서 더 잘하려고 노력했다. 일석 이조였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오던 중에 큰 아이 없이 미스 알렌과 작은 아이만 돌아왔다.


잠시 후, 햇볕에 익어 빨개진 얼굴로 씩씩대며 돌아온 아이는 나에게 서운함을 털어냈다.

오늘 아침부터 컨디션도 너무 안 좋고 학교에서도 몸이 안 좋았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가방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단다. 그래서 미스 알렌에게 가방 좀 들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더니 거절했다는 것이다. 순간 서러워진 큰아이는 그럼 왜 동생 것은 들어주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너는 다 컸잖아 하고 미스 알렌이 외면하는 모습에 너무 화가 난 아들은 가방을 집어던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고ㅡ

사실 다른 도우미들은 아이들 등하교 지원을 할 때 아이들의 가방을 들어주지만 나는 아이가 직접 할 수 있는 한 스스로 챙기기를 원했다. 그래도 동생은 어리다고 매일 가방을 들어주고, 자신은 어쩌다 몸이 안좋은 날 어렵게 꺼낸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자존심이 세서 부탁을 잘 안한다.) 아이가 느꼈을 서운함을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엄마가 미스 알렌과 같이 대화해 보겠다고 하고 샤워를 하고 오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고 아이를 진정시키고 미스 알렌을 불렀다.


먼저 어떤 상황이었는지 얘기를 들었는데, 아이가 말한 그대로의 상황이었다. 알렌은 큰애가 자신에게 부탁하는 태도가 정중하지 않다고 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Jay는 독립적인 아이라서 자기가 할 일은 대부분 자기가 끝냅니다. 내가 데리러 갈 때도 먼저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해도 자기가 가방을 들 힘이 있다면 거절하고 직접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이예요. 다음에 Jay가 부탁할 경우 무리한 부탁이 아니면 그냥 들어주세요. 그리고 태도가 무례하다고 여긴다면 나에게 뒤에서 따로 말해주세요. 훈육은 제가 할게요. 

당신은 아이를 따뜻하게 품어주는 역할이면 됩니다. 당신이 훈육까지 하려고 하면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반감만 살뿐이에요. 나는 아이에게 가서 오늘 했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당신에게 가서 사과하라고 할 거예요. 대신 당신도 아이에게 너의 부탁을 거절해서 미안하다고, 다음번에 너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 나에게 부탁해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세요."


나는 미스 알렌이 아이를 대하는 방법에 대해 선을 만들어주었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조정했다. 지금은 알렌도 큰 아이의 성향을 알고, 서로의 행동이나 말을 오해하기보단 선한 의도로 해석하면서 갈등은 많이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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