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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품은 멜로 '멜로무비' 7화 후기

넷플릭스 드라마 '멜로무비'

by 행복수집가



요즘 넷플릭스에서 '멜로무비'를 재밌게 보고 있다.


섬세한 감정표현, 연출, 연기 모든 게 부족함 하나 없이 모든 게 잘 조화를 이루어 물 흐르듯 편안하게 흘러가는 드라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잔잔한 듯하나 그 안에 깊은 아픔, 슬픔, 사랑, 감동 모든 게 아주 짙게 잘 배어있다.


난 첫 화에서부터 감정몰입이 잘됐다.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인물들의 이야기에 더 빠져들었고, 더 공감하고 이해하며 보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7화가 너무 인상 깊었다. 그래서 7화를 보고 난 후, 내가 느낀 감정을 꼭 적어보고 싶었다.




7화에서는 고겸의 형 고준이 죽었다. 그리고 6화까지 그리 비중이 크지 않았던 고준의 삶을 보여준다.


고준의 인생엔 자기를 위한 기쁨과 행복은 없는 듯 보였다. 삶에 의미도 없고 의지도 없었던 그에게 동생인 겸이는 그가 살 이유였고 의미였다. 동생을 챙겨야 하는 그 책임감이 그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겸이는 형이 좋아하는 것도 없고, 취미도 없고 일만 하면서 재미없게 사는 것 같아 답답해하기도 했다. 겸이가 볼 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고준은 겸이를 위해 사는 게 자신의 행복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취미가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남이 아닌 나를 위한 것들을 할 때 오는 만족감과 행복이 있다. 그러나 고준은 딱히 취향이나 취미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고준은 무채색의 사람이었고 고겸은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사람이다. 밝고 다채로운 겸이 옆에 있을 때 무채색의 고준은 겸이의 밝은 색을 받아 웃기도 하고, 영화를 같이 보며 울기도 했다. 비록 자신에겐 색이 없지만 겸이의 색이 고준을 밝은 빛으로 덮어준다. 고준의 인생에는 겸이가 행복이었다.


겸이가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는 것도 행복, 겸이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 누군가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 겸이 삶 자체가 고준에겐 큰 행복이었다.


어쩌면 고준은 자기만의 사생활을 즐기는 것보다, 겸이가 재밌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그러니 그 누구도 함부로 고준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즐기며 살지 못했다고, 부모 없이 동생을 책임지느라 고생만 했다고 말할 수 없다.


고준은 충분히 행복했고, 더 행복하고 싶어 겸이 곁에서 더 오래 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잠깐 실수를 하긴 했다. 워낙 어린 나이부터 무거운 책임의 짐을 지고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어디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혼자 안에 쌓아두었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키워온 우울감으로 잠깐 죽음의 곁에 가기도 했다.


그래도 살아났고, 고준은 그런 실수를 한 자신을 깊이 후회하며 겸이에게 미안해했다. 물론 그 미안함도 끝까지 숨기려고 애썼지만. 자기 마음을 툭 가볍게 꺼내는 사람이 아니라, 늘 혼자 속에 쌓아두다 보니 속만 깊어졌다. 그 끝이 어딘지 알지 못할 정도로.


그런 고준은 겸이와 사는 동안 그저 행복하고 싶었다.


자기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겸이와 여행하며 보내고 싶어 했다. 그것도 겸이가 가보고 싶어 했던 미국으로.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것도 겸이가 원하는 것이었던 고준. 난 그런 고준이 너무 애틋하다.


그래서 고준의 죽음이 더 슬펐다. 사무치게 슬펐다.


고준의 사연이 주제였던 7화는 특히 더 눈을 뗄 수 없었고, 7화가 끝나고 나서도 내 마음에 고준이 오래 머물렀다.


제삼자가 보면 고준은 평생 재미없게 산 사람으로, 일만 하면서 지루하게 산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준은 겸이 곁에 있던 매 순간 행복했을 것이다. 겸이가 있어서 힘을 냈고, 겸이가 있어서 웃었다.


겸이가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아도, 그냥 겸이가 겸이로 있어주는 그 자체만으로 고준은 충분했다.


내 마음에 고준은 잊지 못할 사람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그를 깊이 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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