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회사 점심시간에 항상 산책을 한다.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먹고, 얼른 산책이 하고 싶어 서둘러 나간다. 요즘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선선해서 산책하기에 딱 좋은 날씨다.
며칠 전에도 평소처럼 즐거운 기분으로 산책을 하고 있었다. 5월에 들어서니 모든 풍경이 초록으로 짙어졌다. 이 풍경을 보는 내 마음도 초록빛 싱그러움으로 물들었다. 한참 이 풍경에 젖어서 산책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받으니, 남편은 지금 집 근처 산책 중인데 너무 이쁘다며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이 날 남편은 오후 늦게 출근이라 낮에 집에 있었는데, 산책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나도 남편에게 지금 산책 중이라고 했다. 남편은 집 뒤의 산책길을 걷고 있었고 난 회사 앞 강변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 자랑하기가 시작됐다.
남편은 집 뒤 산책로에 나무가 많고, 바람에 하얀 잎이 떨어지는데 무척 아름답다고 했다. 나는 지금 강변은 온통 초록초록하고, 내 눈앞에는 유채꽃들도 보이는데 정말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각자가 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묘사할지 애쓰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속에는 '지금 보는 풍경이 너무 이뻐서 너와 함께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어있었다.
지금 사는 집에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남편이 산책했다는 그 길은 내가 아직 가보지 못했다. 남편은 나도 이 길을 산책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도 다음에는 나랑 같이 걷자고 말했다. 우리는 그렇게 다음에 함께하는 산책을 약속했다.
남편은 혼자 산책하다가 이쁜 풍경을 보니 내 생각이 났고, 나에게 말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여기 이렇게 이쁜 길이 있는데 나도 오면 좋을 것 같다고.
남편의 그 마음이 풍경보다 더 아름다웠다.
우리는 사계절 내내 이 날씨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며, 더 더워지기 전에 실컷 산책하고 이 계절과 풍경을 즐기자고 했다. 그리고 좋은 산책 하라며 서로에게 인사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과 통화를 끊고 나서 보는 산책길 풍경은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쁜 길을 함께 걷고 싶은 남편의 이쁜 마음에 내 마음도 한결 더 이뻐졌다.이쁜 마음으로 눈앞의 풍경을 보니 모든 풍경이 유난히 더 반짝이고 나무 한그루, 하늘 한 조각까지도 참 아름답게 보였다. 마음에 사랑이 스며들면 내가 보는 세상도 조금씩 더 아름다워지는 것 같다.
이 날 본 풍경은 내 마음에 무척 따뜻하게 남았다. 행복한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