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만능해결사, 남편
몇 년 동안 계속 전세로 살다가 이번에 이사한 집은 사서 들어갔다. 한동안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을 하니 집을 내 스타일대로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큰 변화는 못 주더라도, 소소하게나마 구석구석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인테리어로 꾸미고 싶은 마음에 새로운 가구와 전자기기를 몇 개 샀다.
우리가 새로 산 것들은 인덕션, 식세기 그리고 거실에 놓을 책장, 테이블, 의자, 조명 등이었다. 화장실 변기도 낡고 더러워서 이번에 새로 샀고, 비데도 새로 설치했다.
테이블이나 의자, 조명은 이케아에서 샀다. 이케아 가구는 다 조립을 해야 했는데 남편이 혼자서 다 했다.
여자들도 조립을 잘하는 사람도 많던데, 나는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조립의 세계엔 발도 못 들인다. 포장지로 선물 포장 하는 것 하나도 어려워하는 나여서, 난 조립 하는 남편을 그저 조용히 응원만 했다. 오히려 내가 손을 데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도 남편이 조립할 때 도움이 필요하면 내가 잡아주거나 거들어주면서 조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조립이 다 되고 나면 가구를 배치하고 정리하는 일은 내가 했다.
이사한 다음날, 우리 부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조립하고 정리했다.
집 문 앞에 가득 쌓여있던 가구 박스가 하나씩 벗겨지고 쿵쿵 탕탕 소리를 내면서 남편이 조립을 했다.
그리고 완성된 가구를 집 안으로 넣어주면 나는 가구를 닦고 배치했다.
조립은 간단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다 손이 많이 가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조립할 게 너무 많아서 '남편이 이걸 다 혼자 하려면 힘들겠다' 싶었는데, 설명서 한 번 보고 뚝딱뚝딱 잘 해내는 남편이 무척 대단해 보였다.
이번에 이사하면서 가장 변화를 크게 준 곳은 거실이었다. 기존에 있던 소파를 과감히 없애고 그 자리에 책장과 테이블을 뒀다. 책장은 4단 하나, 2단 하나로 주문했다. 4단짜리에는 내 책과 물건, 우리 가족들이 공용으로 쓰는 물건을 넣어놓고 2단짜리에는 수지 책과 장난감등을 넣어놓았다.
이 책장조립이 손이 꽤 많이 가는 작업이었는데 남편은 이것도 거뜬히 다 했다. 설명서를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나와 달리, 설명서 한 번 보고 조립을 척척 하는 남편은 내 눈에 만능 해결사, 슈퍼맨 같았다.
남편은 옷방에 시스템 헹거 조립도 도련님과 같이 다 했다. 따로 설치기사님을 부르면 꽤 많은 비용이 들어서 부르지 않고 자기가 직접 하겠다고 하더니 금방 다 해냈다. 정말 대단하다.
비데설치도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혼자 다 했다.
비데 설치는 많이 어려웠는지, 몇 번의 탄식과 힘들다는 말도 했는데 그래도 결국 끝까지 다 해냈다.
남편은 정말 엄청난 고급인력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오빠 나중에 조립이나 설치하는 걸로 부업해도 되겠다"라고 말했다.
진짜 진심이 묻어있는 말이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알아보니, 뭐든지 조립이나 설치해 주는 기사님들 인건비는 매우 비쌌다. 만약 이번에 남편이 설치나 조립을 안 하고 기사님을 불렀으면 설치 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든 거뜬히 잘 조립해 주는 고급인력 남편 덕분에 그 비용을 아끼게 되었다.
아무리 조립을 잘한다고 해도 절대 쉽지 않고, 귀찮기도 할 텐데 그런 내색 없이 알아서 척척 해주는 남편을 보며 정말 존경스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남편의 잠재된 능력을 많이 본 것 같다. 조립 잘하는 능력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이사를 다 마친 지금 우리 집은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다.
우리 집 곳곳에는 남편의 손길이 묻어 있는 게 많다.
내가 매일 앉아 읽고 쓰는 테이블과 의자도 남편이 조립해 준 거고, 저녁마다 우리 집을 은은한 빛으로 물들여주는 조명도 남편이 조립해 준 거다. 내가 볼 때마다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는 책장도 남편이 다 조립해 준 거다.
남편의 손을 거친 이 물건들을 볼 때마다, 남편의 사랑과 정성이 느껴져서 참 고맙다. 뭐든 척척 해내는 든든한 슈퍼맨 같은 남편이 있어서 나는 참 복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