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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른 한 사람' 으로 자라는 아이

자기 취향이 뚜렷해지는 아이를 보며

by 행복수집가

6살 딸아이를 키우다 보니, 갈수록 ‘딸’이라서 보이는 특유의 모습들이 더 뚜렷해진다. 지금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귀여움과 애교도 많아졌지만, 삐치는 순간도 이전보다 훨씬 잦아졌다.


감수성이 풍부한 만큼 예민하기도 해서, 작은 몸짓이나 말투, 표정 하나에도 금세 반응하는 수지를 보면 귀엽다가도 때로는 감정 에너지가 많이 들어 조금 지칠 때도 있다.


딸을 키우는 건 육체적 피로보다 감정적으로 챙겨줄 것들이 훨씬 많아 에너지 소모가 크다. 그래서 아이에게 진심으로 잘 대하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의 감정을 먼저 잘 돌보고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일에도 서로 마음이 상하기 쉽다.


우리는 감정이 부딪히는 순간이 오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금방 사과하고 바로 화해를 한다.


수지가 더 어렸을 때는 소통이라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케어하고 챙기는 일이 많았다. 이거 하자, 저거 하자" 하면 그래도 잘 따라주던 아이였다.


그런데 5살을 지나 6살이 되면서부터는 자기주장이 뚜렷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아이'가 아닌, '나와는 전혀 다른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을 뚜렷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나는 엄마에게 속한 존재가 아니야. 나는 나야."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그만큼 수지는 분명한 고유의 성향과 특성을 가진, '나와 다른 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 역시 아이를 내 소유물처럼 여기지 않고, 독립된 한 사람으로 존중하기 위해 늘 의식적으로 마음을 다잡는다. 이걸 잠시라도 잊으면, 나도 모르게 아이를 내 방식대로 움직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고개를 들기 때문이다.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내 기준과 생각과 다르더라도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오래도록 좋은 관계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수지는 아침에 입을 옷, 머리핀, 신발까지 모두 스스로 고른다. 엄마가 골라주는 옷을 입지 않은 지는 오래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거 입어"가 아니라 "오늘은 뭐 입을래?" 하고 묻는다.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자기 눈에 예쁜 옷, 마음이 가는 옷이 있다. 그래서 내가 예쁘다고 사온 옷들도 수지가 모두 입는 건 아니다. 그중에서도 자기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 입는다.


이제는 옷을 살 때도 나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수지를 매장에 데려가 직접 고르게 하거나, 온라인으로 볼 때도 먼저 보여준다. 자기가 입을 옷을 스스로 고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래서 시간이 더 들고 과정이 조금 까다롭더라도, 이 방식이 맞는 것 같다.


수지는 자기 취향이 뚜렷하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어느새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좋아하는 걸 추구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의 색을 찾아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기특해서 '아, 한 사람으로 잘 자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끔은, 특히 바쁘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오늘만큼은 그냥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하지만 곧 깨닫는다. 아이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결국 내 편의만을 위한 이기적인 바람이라는 걸.


나도 내 취향의 옷을 입어야 하루가 기분 좋듯이,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 내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해야 하루가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수지가 선택하는 데 시간이 걸려도, 까다롭게 느껴져도, 그 과정을 존중하려고 한다. 자기 삶을 좋아하는 방향으로 꾸려가는 모습이 얼마나 기특한가.




얼마 전 아침, 나는 안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었고 수지는 거실에 있었다. 평소보다 조용하면서도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살짝 이상했다. 거실로 나가보니, 수지가 작은 테이블 앞에 앉아 손을 올려놓고 유아용 매니큐어를 바르고 말리고 있었다.


엄마가 화장하는 사이, 아이도 자신의 손톱을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은 손톱에 반짝반짝 정성껏 매니큐어를 바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예전에는 나에게 발라 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척척 해낸다. 그날은 매니큐어에 면사포 머리핀까지 하고 아주 화려하게 등원했다. '오늘 주인공은 나야 나' 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니 이 시기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아껴두고 싶었다. 그래서 눈으로, 마음으로 꾹꾹 담아두었다.


갈수록 자기 취향이 뚜렷해지고, 좋아하는 것이 많아지는 수지를 보며 문득 기분이 좋아진다. 자기 안의 빛을 죽이지 않고, 남들과 맞추려 하지 않고, 눈치 보지 않으며 자신이 좋아하는 방향 그대로 자라나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한 사람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수지가 자신의 고유성을 지키며, 자기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자라주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내 모습대로, 기쁨을 자주 느끼며 살고 싶다. 아이도, 나도, 서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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