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겨주고 내어주는 마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오전에 수지와 뮤지컬을 보고, 오후에는 친정에 갔다. 우리가 간다는 소식에 친정 엄마는 돼지갈비찜을 해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친정 아빠는 출근했다가 일찍 퇴근해서, 귤 한 박스와 수지가 좋아하는 뻥튀기를 사 오셨다.
친정에 가면 우리는 늘 격렬한 환영을 받는다. 수지가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 온 가족의 얼굴이 환해지고 웃음꽃이 핀다. 이 모습을 벌써 6년째 보고 있다. 볼 때마다 행복하다.
수지가 거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수지 앞에 귤을 까서 계속 놓아주셨다. 수지는 그 귤을 받아먹으며 놀이에 전념했다.
귤에 이어 뻥튀기도 끊임없이 제공됐다. 할아버지는 봉지에 담긴 뻥튀기를 수지가 먹기 편하도록 그릇에 담아 앞에 놓아주셨다. 할아버지가 차려준 간식을 수지는 입에 넣기만 했다.
저녁에는 남편도 퇴근 후 친정에 와서 함께 식사를 했다. 엄마는 사위가 와서 밥을 같이 먹어주니 너무 좋다며 이것저것 반찬을 꺼내고, 오징어볶음과 돼지갈비찜을 내주셨다.
엄마는 남편에게 "먹을 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어줘." 하고 애교스럽게 말씀하셨고, 남편은 "아, 맛있습니다!" 하며 잘 먹어주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소식가다. 남편 역시 많이 먹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우리 식구들이 적게 먹다 보니 어느새 우리 집에서는 나름 대식가가 되었다. 남편은 이 날 끝까지 혼자 식탁에 남아 밥을 먹었다. (억지로 먹은 건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잘 먹는 남편을 보니 나도 흐뭇했고, 무엇보다 엄마가 참 좋아하셨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우리는 식탁을 떠나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남편은 배가 부르다며 아이스크림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고, 남편은 그런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친정 아빠가 부엌에 있는 남편 앞에 계속 귤을 갖다 주셨다.
아이스크림은 안 먹어도 귤을 무척 좋아하는 남편은 장인어른이 주신 귤을 모두 먹었다. 그러자 아빠는 또 귤을 가져와 남편 앞에 놓아주셨다. 그렇게 간식 배달은 계속됐다.
우리는 부엌 식탁에, 아빠는 거실 소파에 계셔서 몸은 띠로 있었지만 아빠 마음은 우리에게 와 있었다. 아빠는 손녀와 사위의 간식을 부지런히 챙기셨다. 다 먹고 비워지면, 어느새 다시 채워주셨다.
나는 한참 이야기에 몰입해 있다가 무심코 옆을 봤는데, 남편 앞에 귤껍질이 잔뜩 쌓여 있는 걸 보고 '풉' 웃음이 터졌다.
'아빠가 이렇게 많이 챙겨줬구나.'
그날 수지와 남편은 귤을 배부르게 먹었다. 집에 갈 때는 뻥튀기 한 봉지도 챙겨주셨다. 손녀 먹으라며 야무지게 챙겨주는 모습이 참 따뜻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엄마는 내 먹을 것을 챙겨주셨다. 나는 엄마가 해주는 '깨국'을 참 좋아한다. 이 국은 다른 어디에서도 먹어본 적이 없다. 오직 우리 엄마만 만들 수 있는 맛 같다.
엄마의 깨국은 내가 어릴 때 먹던 그 맛 그대로다. 수십 년이 지나도 맛이 변하지 않는 게 신기하다. 고소한 죽 같아서 그냥 먹어도 맛있고, 밥에 말아먹어도 참 좋다. 배도 든든하고 속도 편하다.
엄마는 집에 가서도 먹으라며 깨국을 챙겨주셨다.
친정을 다녀오는 길, 엄마 아빠가 챙겨주신 것들로 양손이 두둑해졌다. 무거워진 손만큼이나 마음도 사랑으로 가득 찼다.
말없이 손녀와 사위의 간식을 챙기던 아빠, 딸과 손녀, 사위를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 이렇게 사랑으로 우리를 감싸주는 엄마 아빠 덕분에, 유난히 추웠던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했다.
참 행복한 크리스마스였다.